시를♠읽고 -수필

김씨 / 임희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1. 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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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임희구 

 

 

쌀을 씻어 안치는데 어머니가 안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나는, 김씨! 하고 부른다

사람들이 들으면 저런 싸가지 할 것이다

화장실에서 어머니가

!

하신다

나는 빤히 알면서

뭐해?

하고 묻는다

어머니가

, 그냥 앉아 있어 왜?

하신다

나는

그냥 불러봤어

하고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인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똥을 누려고

지금 변기 위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는

나이가 여든다섯이다

나는 어머니보다 마흔 한 살이 어리다

어려도

어머니와 아들 사인데 사십 년 정도는 친구 아닌가

밥이 끓는다

엄마, 오늘 남대문시장 갈까?

?

그냥 

 

엄마가 임마 같다  

 

 

 

―시집소주 한 병이 공짜(문학의전당,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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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있어 아들은 또 다른 연인'

 

 

  '아들과 연인' 이라는 소설을 쓴 D. H. 로렌스의 어머니는 무지하고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얻어내지 못한 사랑을 온통 아들에게로 쏟는다. 뭐든 지나치면은 좋지는 않겠지만 엄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아버지가 딸에게 느끼는 사랑보다 유별하다고 할 수가 있다. 그 사랑이 지나쳐 현대에 와서는 메이트맘을 넘어 헬리콥터맘으로 변질되기도 하는데 아들은 엄마의 또 다른 연인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연정이 늙었다고 해서 식을까, 변할까, 달라질까. 시 속 두 연인은 마흔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엄마''임마'일 정도로 가깝다. 반말을 하고 농짓거리를 하고 뜻도 없는 대화를 나누지만 그 누구도 이상하게 보거나 아들이 싸가지 없다고 보지도 않는다. 아니 오히려 두 연인의 대화가 부럽고 정겨워 귀가 솔깃해진다. 이성간의 사랑 치고 뒤탈이 없는 사랑이다.

 

  내 연정은 내가 미처 연정을 알기도 전에 달의 나라로 갔지만 달의 나라가 아닌 태양의 나라로 갔다한들 그 연정이 식겠는가 변하는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오롯이 보고 싶고 그리운 나의 사랑이여, 연정이여. 그 연정을 대신할 연정은 이 세상 어디에 다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