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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이성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2. 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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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미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누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ㅡ시집『우리들의 양식』(민음사, 1974)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50]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5』(국립공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