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시대
이창기
라면이 끓는 사이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낸다. 무정란이다. 껍데기에는 붉은 핏자국과 함께 생산일자가 찍혀 있다. 누군가 그를 낳은 것이다. 비좁은 닭장에 갇혀, 애비도 없이. 그가 누굴 닮았건, 그가 누구이건 인 마이 마인드, 인 마이 하트, 인 마이 소울을 외치면 곧장 가격표가 붙고 유통된다. 소비는 그의 약속된 미래다. 그는 완전한 무엇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날아오르기를 꿈꾸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누군가를 애끓게 사랑했던 기억도 없다. 그런데 까보면 노른자도 있다. 진짜 같다.
—시집 『착한 애인은 없다네』 (창비, 2014)
언젠가 티브에서 물대포를 맞고 죽음을 맞이하는 수평아리들을 본 적이 있다. 감별사의 손을 떠난 수평아리는 무정란도 낳은 수 없는 수놈으로 태어났다는 죄로 즉결처분을 받는 것이다. 성의 불공평이 아니라 생사가 달린 경제논리다. 이렇게 선택 받은 암평아리는 제일 먼저 항생제를 탄 물로 생의 시작을 알린다. 그 다음 아프지도 말고 무정란을 쑥쑥 잘 생산하라고 사랑의 항생제 주사를 한방 먹인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일생은 몸도 돌리리 못하는 좁은 케이지에 갇혀 일평생 낮밤으로 무정란을 낳다가 폐계닭이라는 이름으로 생을 마감한다. ‘시의 시대’...제목만 봐서는 언뜻 시의 중흥기를 읊은 시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까보면 노른자도 있는 진짜 같은 알.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는 알을 맛있게 먹는 독자는 이 시를 읽으면 섬뜩하다. 이 시는 시의 시대에 시인들에게 무엇을 쓸 것인가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독자가 시인이고 시인이 독자인 이 시대의 패러독스. 한때 참여시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들은 지금 무엇에 대한 고민을 하며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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