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사랑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계간『시와 사람』 (2003년 봄호)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제3권』 (국립공원발행, 2007)
무등산에는 부서진 돌 파편이 내를 이루고 있는 너덜겅이 눈길을 끈다. 등산을 하다보면 산자락 곳곳에 흩어진 돌무더기를 볼 수가 있다. 장불재에서 규봉가는 길은 흙길보다 돌길이 더 많은 너덜길이다. 이렇게 부서진 돌이 많은 것은 무등산의 상징인 입석대, 서석대, 규봉 등 이런 주상절리 돌기둥이 오랜 세월에 걸쳐 무너져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런 돌기둥이 무너져 내리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 지금은 인스턴트 시대 패스트푸드 시대이다. 비둘기호라는 추억의 완행열차도 없어지고 급행이라는 열차도 없어진지 오래이다. 지금은 시속 300킬로를 KTX가 달리고 있다. 아니 날아다닌다고 해야 어울리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이렇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 가는데 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윙크를 한다. 지구를 향한 그리움이 식지도 않는다.
돌부처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까 바위도 아니고 돌멩이가 된 것도 아니고 모래무덤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순간이고 찰라인데 그 돌부처님 눈 한 번 감고 있는 시간이 참 길기도 하다. 어찌 그 긴 사랑을 더디다고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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