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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수익] 그리운 악마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4. 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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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악마

 

이수익

 

 

숨겨 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 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암호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 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 같은 여자.

 

 

 

시집푸른 추억의 빵(고려원, 199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문학과지성사, 2007)

 

 

 

  현대시 100년 되는 해 2007년에 문지에서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을 펴냈다. 이 시선집은 1999년 말에 시작하여 8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국근대시의 태동기에서부터 1990년까지의 주목할 만한 시인 최남선에서부터 이장욱에까지 166명의 시인들의 시 680여 편의 시가 실려 있다.

 

  수록된 작품은 생존 시인의 경우 6편을 자선하여 그중 4편을 엮은이가 선정을 하였으며 고인이 된 시인은 해제자가 8편을 추천하여 그중 4펴을 엮은이가 선정하였다고 한다. 이수익 시인의 그리운 악마이 시 또한 이 시선집에 실려 있는데 폐가(廢家), 추락을 꿈꾸며, 방울소리, 그리운 악마 4편이다. 엮은이가 4편을 임의로 실었다고는 하나 시인 자신이 6편을 자선하였으니 대표작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각 시인들이 자선한 4편의 시의 면면을 보면 어떤 시인은 문학성을 위주로 자선을 했고 어떤 시인들은 예술성과 소통이 되는 대중적인 시를 자선한 시인들도 있다. 다만 이름만 물어보면 일반인 누구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시인 몇은 빠져있지만 내노라하는 대한민국의 시인들이 망라돼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런 사랑 시를 쓴 시인들은 꽤 여럿이 있다. 시치미 뚝 떼는 이재무 시인의 좋겠다, 마량에 가면’, 플라토닉 러브를 꿈꾸는 임보 시인의 남 몰래’, 가 있고 시인이 술을 좋아하시는지 그저 술이나 기막히게 잘 담그면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좋겠다는 김석규 시인의 여자가 있다. 그런가하면 이런 여자라면 딱 한 번만 살았으면 좋겠다로 시작되는 송수권 시인의 여자에 이르면 그야말로 세상사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순수한 이상의 로망을 그리고 있다. 시인만이 가질 수 있고 시인만이 꿈꾸는 파라다이스의 로맨스,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에 나오는 병신 같은 여자가 그런 여자가 아닐까 싶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흐르는 물/정호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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