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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벅을 무슨 시?/이승훈 - 카톡 좋은 시 97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5. 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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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97  

빌어먹을 무슨 시?

 

이승

 

더워 죽겠는데 거실 전화 소리가 시끄러워

전화 그만 해요!” 아내에게 화도 못 내고

참는 건 부처님이 참으라고 해서 참는 거야.

문을 닫고 고물 선풍기 틀고 반바지 입고

앉아 시를 쓰네. 모두 버리면 돼! 버리면 돼!

버리면 안 돼? 버리면 안 돼? 오전엔 약국

가려고 길을 건너다 갑자기 어지러워 걸을

수 없었지. 왼 발 바른 발이 따로 노는 거야.

코를 손에 박고 계단을 올라갔지.

사는 건 뒤죽박죽 시도 뒤죽박죽 밥도 뒤

죽박죽이다. 콩나물국 먼저 먹고 두부 먹고

밥 한 숟갈 뜨고 천정 보고 하하 나 밥 먹

!” 말해도 되고 열무김치 먼저 먹고 두부

먹어도 된다. 무슨 순서가 있는가? 밥 먹고

두부 먹어도 되고 두부 먹고 밥 먹어도 되네.

부처님도 이랬다 저랬다 하잖아?

 

오늘은 책들도 뒤죽박죽 재떨이도 뒤죽박

죽이다. “책 한 권 찾아와!” “책 이름이 뭡

니까?”“책 이름이 어딨어? 이 미련한 놈아!

그게 그거야.” 스님은 말씀하시고 난 서가

에서 아무 책이나 한 권 뽑아 드렸지. 신문

도 뒤죽박죽이야. 사설 읽고 정치면 사회면

읽어도 되지만 사회면 읽고 사설 읽어도 된

. 난 일기예보 오늘의 운세 먼저 읽는다.

빌어먹을 무슨 시? 뒤죽박죽이 진리다.

래서 좋다.

 

계간시와 세계(2013년 여름호)

 

  빌어먹을 무슨 시?


  이승훈
 

 

  더워 죽겠는데 거실 전화 소리가 시끄러워 “전화 그만 해요!” 아내에게 화도 못 내고 참는 건 부처님이 참으라고 해서 참는 거야. 문을 닫고 고물 선풍기 틀고 반바지 입고 앉아 시를 쓰네. 모두 버리면 돼! 버리면 돼! 버리면 안 돼? 버리면 안 돼? 오전엔 약국 가려고 길을 건너다 갑자기 어지러워 걸을 수 없었지. 왼 발 바른 발이 따로 노는 거야. 코를 손에 박고 계단을 올라갔지.
 

  사는 건 뒤죽박죽 시도 뒤죽박죽 밥도 뒤죽박죽이다. 콩나물국 먼저 먹고 두부 먹고 밥 한 숟갈 뜨고 천정 보고 “하하 나 밥 먹어!” 말해도 되고 열무김치 먼저 먹고 두부 먹어도 된다. 무슨 순서가 있는가? 밥 먹고 두부 먹어도 되고 두부 먹고 밥 먹어도 되네. 부처님도 이랬다 저랬다 하잖아?
 

  오늘은 책들도 뒤죽박죽 재떨이도 뒤죽박죽이다. “책 한 권 찾아와!” “책 이름이 뭡니까?”“책 이름이 어딨어? 이 미련한 놈아! 그게 그거야.” 스님은 말씀하시고 난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한 권 뽑아 드렸지. 신문도 뒤죽박죽이야. 사설 읽고 정치면 사회면 읽어도 되지만 사회면 읽고 사설 읽어도 된다. 난 일기예보 오늘의 운세 먼저 읽는다. 빌어먹을 무슨 시? 뒤죽박죽이 진리다. 그래서 좋다.

 

 

―계간『시와 세계』(201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