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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폐광」
아는 사람 몇 명
땅에 묻어본 다음
존재했던 건 전부
결국에는
지층이라는 걸 알았다.
세상의 왼쪽 가슴쯤을
관통했을 이 구멍을
걸어 들어가며
복잡한 연대기를 읽는다.
결코 위대하지 않았을 말들과
싸움과 사랑과 밥이
이 쭈글쭈글한
통로에 새겨져 있다.
그 놈의 눈물은 이제껏 흐른다.
그래도 가끔은 반짝이는 게 있다.
스스로 걸어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나가는 길을 못 찾은 자들의 뼈.
▶ 시·낭송 _ 허연 –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가 있다.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고전 탐닉』을 냈다. 한국출판학술상 시작작품상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배달하며
우리 안의 슬픈 폐광이 시커멓게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싸움과 사랑과 밥? 복잡한 연대기는 결국 지층이 되고 스스로 걸어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나가는 길을 못 찾은 슬픈 구멍의 운명들이다.
삶을 시로 투시하는 힘과 연륜을 느끼게 한다. 감상적이거나 낭만적 징후를 드러내기 쉬운 그놈의 눈물이라는 시어도 여기에서는 묘하게 반짝인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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