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1901∼1989)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양보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응답하라 1988’이 한창 인기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서울 쌍문동이다. 그런데 원래 쌍문동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함석헌이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은 함석헌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곳이고, 2015년에는 그 자리에 함석헌 기념관이 개관하기도 했다.
새해는 언제나 극단적이다. 그것은 희망이나 포기로 출발하게 된다. 그러나 지레짐작 희망이나 포기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보다 힘써 선택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되는 일, ‘그 사람’을 가지고 지키는 일에 있다. 다시 2017년 벽두가 되어 이 시를 읽을 때에는, 지금보다 덜 부끄럽기를 바라본다.
나민애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