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 「복무 일기」
이현호, 「복무 일기」
철원에서는 올해 첫 얼음이 얼렸다는 소식이다 새벽 내내 끄물거리던 하늘은 멍든 입술을 다물었지만 내 속에서는 더운 김이 마술사 입안의 리본같이 새어나왔다 입김들이 는개같이 들어 자분자분 새벽을 접어 쓴 편지를 적실 때 내 안의 철책 위로도 가는 비 내렸다 물기로 축축한 글자들의 무게만큼 올겨울이 길듯 싶었다 늦가을이 독감을 앓고 물러난 자리마다 아직 아프지 못한 너의 이름 눈사람의 머리와 몸통처럼 아슬하게 나는 바깥에 닿아 있었고 몇 번인가 시간의 별명을 귓결로 들으며 나도 모르게 젊고 병들었다 그즈음 나는 풍문처럼 철원에 있었다 만년설처럼 엎드려서 입이 없었다 생면부지의 눈꽃이 자주 이는,
▶시_ 이현호 – 1983년 충남 전의에서 태어났다. 2007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가 있다.
▶낭송 – 홍서준 – 배우. 뮤지컬 ,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인간의 상상력이란 큰 숫자를 다루지 못한다. 250만 명 이상이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50만 명의 중공군이, 100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110만 명의 북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2만 6천명의 미군 병사들이 한국전쟁에서 죽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1941- )는 ‘한국의 비무장 지대를 방문하며;하이븐’ 이라는 시에서 이같이 노래했다. 경비 초소 사이로 떼 지어 밀려가는 하얀 것은 -천사들? 백로의 무리… 이 숨 막히는 초원의 평화를 지키는 젊은 시인이 얼음의 땅에 엎드려 멍든 입술로 쓴 복무일기이다. 핵 실험 뉴스를 들으며 동시에 슬픈 만년설처럼 굳어버린 대지에서 생면부지의 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젊음을 떠올린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라이터 좀 빌립시다』(문학동네)
▶ 음악_ 이원경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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