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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이, 「등꽃이 필 때」(문정희 시배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2. 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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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이, 「등꽃이 필 때」

 

김윤이, 「등꽃이 필 때」

 

 

목욕탕 안 노파 둘이 서로의 머리에 염색을 해준다
솔이 닳은 칫솔로 약을 묻힐 때 백발이 윤기로 물들어간다
모락모락 머릿속에서 훈김 오르고 굽은 등허리가 뽀얀 유
리알처럼
맺힌 물방울 툭툭 떨군다 허옇게 새어가는 등꽃의
성긴 줄기 끝, 지상의 모든 꽃잎
귀밑머리처럼 붉어진다
염색을 끝내고 졸음에 겨운 노파는 환한 등꽃 내걸고 어
디까지 가나
헤싱헤싱한 꽃잎 머리 올처럼 넘실대면 새물내가 몸에 배
어 코끝 아릿한 곳
어느새 자욱한 생을 건넜던가 아랫도리까지 걷고 내려가
는 등걸 밑
등꽃이 후드득, 핀다

▶시_ 김윤이 –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독한 연애』 등이 있다. ‘시힘’ 동인.

▶낭송 – 손경원 – 배우. 영화 '다세포 소녀' '그 놈 목소리' '너는 내 운명' '하류인생' 외 다수.

 

배달하며

‘등꽃이 필 때’의 등은 등(燈 lamp)이며 또한 사람의 배 가슴 배면에 있는 등(背 back이다. 등불로 흔들리다 자욱한 생을 내려가는 등걸 밑의 풍경이 염색약으로 막을 수 없는 헤싱헤싱한 꽃잎으로서의 아릿한 풍경을 보여준다.
과격한 경쟁에 내몰리어 등급에 시달리고, 등록금에 시달리고, 각종 등록증에 시달린 탓인가. 등꽃의 등이 자꾸 여러 의미로 확산되려고 한다.
솔이 닳은 칫솔로 서로의 백발에 염색을 해 주는 따스한 이 시는 쉽지만 여러 겹이다. 마지막 행 ‘등꽃이 후드득, 핀다’가 ‘…흐드득, 진다’가 아니어서 더욱 환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독한 연애』(문학동네)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김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