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254
야훼님 전상서 /고정희
한 사나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 추위와 각고를 끝낸 사나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주 멀리 떠난 줄 알았던 그, 이제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줄 알았던 그 사나이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섬광 같은 눈빛을 간직한 채 그의 기원을 묻어 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영원히 닫긴 줄 알았던 우리들 기도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영원히 끝날 줄 알았던 자유의 휘파람 소리가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우리들 기다림이 불기둥으로 일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야훼님! 그가 돌아온 '마음과 지붕' 은 아직 어둡습니다. 그가 돌아온 '교회당과 십자가' 는 더더욱 고독합니다. 그가 돌아온 '들판과 전답' 은 이 무지막지한 어둠과 음모 속에 누워 있습니다. 우리가 저 대지의 주인일 수 있을 때까지
"재림하지 마소서"* 그리고 용서하소서. 신도보다 잘 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 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 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독자보다 배부른 시인을 용서하시고 백성보다 살쪄 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소서
*김광규의「'연도」에서 전용.
―고정희 지음『고정희 시전집 세트 1』(또하나의문화,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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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님 전상서
고정희
한 사나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 추위와 각고를 끝낸 사나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주 멀리 멀리 떠난 줄 알았던 그, 이제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줄 알았던 그 사나이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섬광 같은 눈빛을 간직한 채 그의 기원을 묻어 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영원히 닫긴 줄 알았던 우리들 기도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영원히 끝날 줄 알았던 자유의 휘파람 소리가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우리들 기다림이 불기둥으로 일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야훼님!
그가 돌아온 '마음과 지붕' 은 아직 어둡습니다.
그가 돌아온 '교회당과 십자가' 는 더더욱 고독합니다.
그가 돌아온 '들판과 전답' 은 이 무지막지한 어둠과 음모 속에 누워 있습니다.
우리가 저 대지의 주인일 수 있을 때까지
"재림하지 마소서"*
그리고 용서하소서.
신도보다 잘 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 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 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독자보다 배부른 시인을 용서하시고
백성보다 살쪄 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소서
*김광규의「'연도」에서 전용.
―고정희 지음『고정희 시전집 세트 1』(또하나의문화,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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