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 「소주병」
공광규,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신을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시_ 공광규 –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홍성과 보령을 거쳐 청양에서 성장했다.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등이 있다.
▶ 낭송_ 홍서준 – 배우. 뮤지컬 , 등에 출연.
배달하며
배달하며
소주가 서민의 술이기 때문일까. 시 속에 소주가 등장하면 우선 편하고 친근하다. 오랜 가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십년 동안 청계천 건너 빌딩 숲을 오가며 밥을 구하러 다녔다는 시인은 주름과 뱃살과 흰 머리에 겹치어 딸과의 대화를 ‘자화상’으로 그려 놓은 시도 썼다. 아빠 사무실 가까이 와서 저녁을 먹고 간 딸이 아빠 얼굴이 가엽다고 했다한다. 시인은 청계천을 내려다보는데 얼굴이 뭉개진 그림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고 했다. 소주병처럼 쪼그려 앉은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이제 그 나이가 되어가는 시인과 그 시인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 애잔한 가족 3대가 두 편의 시속에서 혈연의 끈끈한 밧줄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소주병』(실천문학사)
▶ 음악_ Won's music library 01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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