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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칠백만원/박형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8. 17.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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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칠백만원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16-08-12 03:00:00 수정 2016-08-12 03:00:00


칠백만원 ― 박형준(1966∼ )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젠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이 시는 위대한 유산에 대한 것이다. 그 유산의 금액은 칠백만 원이다. 위대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적은 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돈은 시골 어머니가 천 원 한 장, 만 원 한 장, 이렇게 조금씩 모아서 만든 돈이었다. 푼돈이 칠백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얼마나 오래 애쓰셨을까. 어머니는 지폐 한 장을 보태면서 아들을 그리워했고, 또 한 장을 보태면서 아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칠백만 원은 칠백 번의 사랑이고 걱정이다. 그러니 결코 적은 돈이라고 할 수 없다.  

어머니는 아들의 장가 밑천으로 그 돈을 모았는데, 불행하게도 아들은 그 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진짜 중요한 사실은 어머니의 일생에서 자식이 마치 신과 같았다는 것이다. 시인은 잃어버린 돈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울고 있다.

울고 있는 시인은 가엾지 않다. 그는 가여운 사람이 아니라 아주 큰 사랑의 곳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가 평생을 바쳐 귀하게 사랑했다는 사실이 ‘칠백만 원’으로 남아 있다. 만약 세상이 아들에게 너그럽지 않은 날이 온다면 그는 어머니의 칠백만 원을 생각할 것이다. 세상이 춥고 배고파도 역시 어머니의 칠백만 원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칠백만 원은 칠억보다, 칠십억보다도 위대하다. 잃어버린 칠백만 원은 시인의 평생을 먹여 살릴 사랑의 곳간이 되어 줄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과 평생을 구원하다니, 이렇게 위대한 사랑이 또 있을까.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