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은 나라의 온 국민이 하나의 주제를 시간이라는 화폭 하나에 담아내는 해였다. 오브제들도 꽃잎과 눈물과 분노로 단출했다. 그 그림 속에는 피다 말고 져 내린 꽃잎들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에서 쏟아지던 피눈물이 얽히고설켜있다. 그러고도 마무리 짓지 못한 화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세밑으로 가고 있다. 역사상 초유의 어이없는 일로 모두가 힘겨웠던 한 해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이 위안은커녕 가장 큰 욕이었던 해, 결코 흐르지 않고 멈추어버릴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화폭 속에서 조금씩 흘렀는지 그새 한 해의 끝머리란다.
그러니, 사람에게 유일한 위안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시간’임에 틀림없다. 시인도 벌써 쉰한 해라는 기억의 저장소를 만들어 두었다고 하듯, “안녕, 갑오”라고 인사를 고하면 기억이 되겠지만 아직 남은 이틀이 있다. 그 시간 안에 그릴 기억들과 다시 이어질 기억들은 단단히 묶여 연하게 된다. 그것이 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잠시, 안녕, 갑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