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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나태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10. 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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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삶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

 

 

 

  나태주 시인은 평생을 교직에 몸 담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던 중 췌장에 이상이 생겨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학교에서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영정사진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일어나 퇴임식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건강을 회복해서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인 시인은 신앙과 기도의 힘으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는 것 같다.  

 

  어느 글에선가 시인은 자신의 삶에서 자랑스러운 것이 네 가지라고 했다. 첫째, 교직생활을 한 것. 둘째, 평생 쉬지 않고 시를 쓴 것. 셋째, 한번도 시골을 떠나지 않은 것. 넷째, 자가용 승용차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들었다. 시도 그렇지만 삶 자체가 소박하고 아름다운 분이시다.  

 

  이 시는 아마 병상에 있을 때 힘들게 간호하는 아내를 보며 쓰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의 고통보다는 옆에 있는 아내에 대한 애틋한 정과 사랑이 눈물겹게 묘사되어 있다. 아픈 사람에게는 자신의 병보다는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게 더욱 고통스런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아내가 답시로 썼다는 아래글을 읽게 되면 그나마 참았던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마음이라면 두 분의 기도를 하나님도 외면하실 수가 없으셨을 것이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자겨 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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