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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요리사의 책상/남진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1. 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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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요리사의 책상/남진우

입력 : 2017-01-06 18:00 ㅣ 수정 : 2017-01-07 01:44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107022005&wlog_tag3=daum#csidx217a7e42b325ff599326da0f67f975a


요리사의 책상/남진우  

내 타자기로는 
빵을 굽거나 생선을 튀길 수 없다 
서투른 요리사처럼 손가락 끝으로 톡톡 쳐봐도 
백지엔 부서진 글자의 파편만 어지러이 나뒹굴 뿐
그 어떤 조미료도 국물도 없이 
나는 황야를 떠돌며 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 
때로 책상 앞에서 잠시 잠에 빠지면 타자기는 나 대신
빵을 굽고 생선 튀기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보글보글 
끓어넘치는 타자기 
방 안을 떠다니는 온갖 음식들의 향기 
자판이 움직일 때마다 밀가루 반죽이 퍼져나가고
수면 위로 튀어오른 생선이 비늘을 번득인다 

늦은 저녁 
타자기가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텅빈 거리 저편 홀로 불 환히 켠 식당을 향해 
배고픈 입 한껏 벌리고 

새해 첫날 누가 ‘시 써서 먹고살 만하냐’고 물었습니다. 예부터 없고 귀해 그랬겠지만 같은 값이면 ‘웃고 살 만하냐’ ‘놀고 살 만하냐’ 물으면 더 좋을 텐데, 그래도 딱히 굶은 적은 없으니 살 만하게 살았나 봅니다. 그만큼 먹고사는 일이 중하니, 글 쓰는 사람에겐 타자기가 밥솥이자 불판일 테고, 우리 모두는 결국 제 삶을 위한 요리사일 겁니다. 시에서 보이는 대로 타자기가 저절로 글을 써서 음식을 구해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꿈을 꾸는 것처럼 정말 내가 아니라 타자기가 글을 쓰고 있는 듯한 때가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 ‘이상한 느낌’이 이 분명한 ‘먹고사는 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일까요? 마치 사랑처럼 말입니다. 시의 마지막 대목처럼 밥을 하는 사람도 배가 고픈 법입니다. 살기가 힘드니까 사랑하기도 힘들지만, 새해에는 모두 ‘사랑하고 살 만하다’고 말하면 좋겠습니다.

신용목 시인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107022005&wlog_tag3=daum#csidx062317485392efa97b2637079283d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