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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 한 편 읽기 18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김남극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4. 1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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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 한 편 읽기 18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김남극>



출처: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 안도현 시배달 2007-05-21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김남극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묵었고

연초록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을 비벼 먹으면서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보다가

한때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햇살도 한 평밖에 몸 닿지 못하는 참나무숲

새끼손가락만한 연초록 대궁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까실까실한,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

허튼 약속처럼 들리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종아리가 희고 실했던

가슴이 크고 눈이 깊던 첫사랑 그 여자 얼굴을

사발에 비벼

목구멍에 밀어 넣으면서

허기를 쫓으면서

 

시집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문학동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