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교통 ☞ 지하철 수유역 4번 출구 / 마을버스 01번 종점 하차(아카데미하우스-통일교육원)
♠해공 신익희 선생 생애 ☞네이버 워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C%9D%B5%ED%9D%AC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묘소 앞 신익희 선생 안내판'->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박사 묘역 찾아가는 길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왼쪽 등산로 구천교를 건너 진달래 능선 대동문 가는 길. 오른쪽 신익희 선생, 신하균 선생 묘멱은 오른쪽 안내도와 안내석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확대됩니다'->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가마터는 신하균 선생 묘역 옆 작은 길로 나가도 된다'->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해공 신익희 선생 묘도 왼쪽에 4.19혁명 기념비'->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봉분 앞에 향로석과 상석'->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
상석과 혼유석, 그리고 향로석은 모두 묘제를 지낼 때 각각 제수(祭需)와 향로와 향합을 차리거나 올려놓는 데 쓰이고 있다. 혼유석은(魂遊石)은 상석(床石) 뒤쪽 무덤 앞에 놓은 직사각형의 돌로, 영혼이 나와서 놀도록 설치하는 것이라 한다.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석호, 망주석, 문인석과 추모비'->
<석양, 석호, 석마>
석양은 온순함의 상징이고 석호는 사나움의 상징으로 양(羊)과 음(虎)의 기운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양은 악귀를 막은 성격을 띠고 있어 외부의 침입을 경계하는 형태로 능 밖을 바라보고 있고 석호는 호랑이로서 능을 맹수로부터 보호하고 내쫓는 역할로 외부의 침입을 경계하는 형태로 바깥쪽을 바라보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석양(石羊)은 서있는 자세이고 석호(石虎)는 앉아있는 자세인데 모두 능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망주석 -가져온 글>
우리나라 매장 풍습에는 봉분 앞에 방향을 정해 상석, 묘비, 장명등, 문인석, 망주석 등을 세운다. 봉분 맨 앞 좌우 서있는 돌기둥이 망주석이다. 팔각형의 둥그스름한 생김새도 남근을 닮은 기자석이고 3분의 1 지점에 작은 동물 형상이 디자인되어 있다.
동물문양은 망주석을 오르거나 내려가는 모습이며 없는 것도 있다.
지형, 풍수 등에 따라 다르다. 망주석에는 보통 맨 위에 연꽃 문양을 새겨 놓고 아래는 소반을 새긴다. 망주석은 망두석으로도 불리는데 영혼이 나와 쉬는 곳이다. 또는 밖에 나갔던 영혼이 망주석을 보고 찾아오는 표식이라고도 한다.
오래된 망주석에는 도롱뇽이 디자인되어 있다. 도롱뇽은 양서류로 물과 육지에서 활동이 가능하다. 민간에서 영혼은 육지보다는 물을 좋아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영혼이 무덤을 빠져나와 속세를 구경할 때 수륙을 넘나드는 도롱뇽을 타고 다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반들은 용도 용나름이지 도롱뇽을 타고 다닌다는 것이 어색했는지 세호(細虎 : 작은 호랑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을 지나면서 변화를 겪는다. 도롱뇽이나 세호까지는 귀족들의 문화였다면 세호가 민간으로 내려오면서 슬그머니 다람쥐가 된 것이다.
서민들은 다람쥐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다람쥐는 가을이 되면 열심히 도토리와 먹잇감을 주워 땅에 묻어 숨겨둔다. 하지만 다람쥐는 자기가 숨겨둔 도토리의 10%도 못 찾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90%는 발아하여 도토리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망주석의 다람쥐가 오르는 것은 쉬러가고 내려가는 것은 일하러 가는 것이다. 결국 다산과 만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심어놓은 것이다.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장명등'->
<석등(장명등) -네이버 두산백과>
석등은 사찰뿐만 아니라 능묘 앞에 세워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기능을 갖고 있다. 고려 말에 처음 보이는데, 공민왕 현릉(玄陵)의 장명등 이후 왕릉에는 반드시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일품 이상의 재상의 묘역에만 세울 수 있었으므로, 매장된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는 표시물이 되기도 했다. 초기에는 불을 밝힐 수 있는 장명등의 화창(火窓) 부분에 실제로 기름 등잔을 놓아 묘역을 밝히는 기능을 했으나, 점차 형식적인 장식물이 되었다.
받침대와 몸체, 지붕의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초기에는 길고 날씬한 기둥 모양이었으나 차차 작고 뭉툭해졌다. 고려 말에 건조된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앞 석등에서 잘 알 수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해공 신익희 선생 묘역 찾아가는 길 '묘소에서 내려다 본 묘도'->
되돌아내려가기 전에 바로 옆에 해공 신익희 선생의 아드님이신 평산 신하균 선생의 묘역이 있다.
<사진으로 보는 4.19국립묘지 - 국립4.19민주묘지 -사진을 클릭하세요>
<강북구 북한산둘레길(순례길 구간) 애국선열 묘역 찾아가는 길 ☞사진을 클릭하세요>
<강북구의 역사와문화 -사람들 다음 블로그 ☞사진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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