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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김수열
겨울산을 오른다는 건 나무가 되는 것
모든 겉치레를 벗어버린 나무가
그런 나무와 마주 서 있는 동안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나무가 되는 것
나무가 되어 나무의 마음을 엿듣는 것
가문 물소리에 대해
돌아오지 않는 새소리에 대해
임자 없는 무덤의 쓸쓸함에 대해
겨울산을 내린다는 건 바람이 되는 것
정처 없이 하늘을 떠돌던 바람이
곤한 몸을 지상에 내려놓는 동안
바람과 바람 사이에서 바람이 되는 것
바람이 되어 바람의 마음을 품는 것
서걱서걱 조릿대에 대해
풍화된 노루의 뼈에 대해
눈발을 숨긴 키 작은 구름에 대해
겨울산이 된다는 건
늙은 코끼리의 굽은 등이 되는 것
-시집 『생각을 훔치다』(삶이보이는창,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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