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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시 창작 강의 (30) - 사물시와 관념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8. 3. 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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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시 창작 강의 30


사물시와 관념시




포괄적으로 언어에 따르는 형식, 혹은 구조적 특성에서 시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그룹이 신비평가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시는 플라톤이 말하는 윤리적 문맥이 아닌, <시만이 가진 특수한 쾌락과 기능과 본질>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러면 시만의 특수한 가치를 지니는 특수한 존재형식이 시라면 그 존재의 참된 모습은 무엇일까. 신비평가들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하여 시가 다른 유형의 언어양식과 구별되는 이 시만이 지닌 고유한 특성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신비평가 중의 한사람인 랜섬은 시가 특수한 가치를 지닌 특수한 존재라는 명제를 담화형식을 기준으로 해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적인 담화형식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나는 다른 담화형식을 공유하며, 다른 하나는 오직 시적인 담화형식으로만 드러나는 유형이다. 동시에 시는 시인이 다루는 제재의 유형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하나는 사물을 제재로 하는 시이며, 다른 하나는 관념을 제재로 하는 시이다. 전자를 사물시, 후자를 관념시라고 부른다.


사물시는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시나, 포괄적으로 물질 현상을 노래하는 시, 순수시 등을 포함한다. 이미지스트 시인들은 사물을 사물성 속에서 제시한다. 일반 대중들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었으므로 시에서 사물성이 아니라 관념을 읽으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일반 대중들의 사물인식 방법은 감성에 의존하기 보다는 이성적인 사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지스트들은 시에서 관념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 곧 사물성을 증명하려고 한다. 물질현상을 포괄적으로 노래하는 시인들은 사물과 관념의 상반성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지와 관념의 상반성에 유의하고 있다. 사물을 대신한 이미지가 나타내는 것은 세계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은밀히 반영된 것이다. 시인들은 사물의 관념성을 믿지 않으며, 사물을 논의하기 위하여 이미지라는 말을 사용한다. 물론 시는 최초의 이미지들만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스스로의 열정으로/안으로만 발갛게/달구어진 그리움//

예전엔/이런 간절함/몰랐었지요//

가물수록/더해지는/그대 향한 기다림//

눈물일랑/넉넉한 기쁨으로/자라나기까지//

설움일랑/까만씨 맺혀 둔/다짐이 되기까지//

실바람 소리 없이/푸른 외투 차려입고/8월 태양을 품었지요//


독자의 시 <수박> 전문


그러나 물질 현상만을 노래하는 시인들은 관념에 도전하기 위하여 사물의 최초 이미지만을 강조하며 이러한 사물시의 개념은 아이들의 시각에서 쉽게 포착되고 있다할 것이다. 아이들은 체계적 관념이 아니라 단순히 사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즐긴다. 순수시는 사물시의 변주이며 조지 무어처럼 이미지의 구성을 통한 순수한 재현, 관조의 세게를 만들어 낸다. 이때 시는 관념 혹은 사상이 인간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에 대한 도전이 된다. 아무튼 사물시는 이미지스트의 시든 포괄적 개념으로서의 시든, 순수시든 한결같이 관념을 죽임으로서 관념의 허위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을 보여주게 된다. 이미지스트의 경우, 시적 동기는 체계적인 추상화의 세계, 곧 과학의 세계에 대한 혐오가 된다.


이와 상반되는 관념시는 관념(고독, 슬픔, 효, 애국, 기쁨, 사랑, 우정, 도덕적 명제나 철학적 명제 등)을 노래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사물의 세계를 파고든다. 사물시가 비록 순수관념으로써의 어떤 관념을 노출 한다면 관념시는 관념을 은폐하기 위하여 사물처럼 보이도록 노력한다. 관념시의 목적은 관념의 전달에 있을 뿐이다. 따라서 관념시는 시를 가장한 과학이거나, 도덕이거나, 법률이거나 아니면 추상의 섹에 지나지 않는다. 테이트의 견해에 의하면 관념시는 알레고리에 지나지 않으며, 수사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도 가슴깊이 사무치길레/깊은 밤 잠 못 들고/그대 창문 바라보며/하얗게 새벽을 잉태하고 말았네//

그대/야속히 떠나가며 남긴 그리움/예서 살고/돌아설 때 매달리던 절명의 소리/외로움 되어 그대 가슴에 남네//

홀로된 밤/홀로 기억된 그대//

흰머리 긴 겨울밤/먼 새벽을 재촉하는구나


독자의 시 <그리움> 전문


관념시의 악성은 사물시를 모방할 뿐 참된 시가 못되는 점에 있다. 참된 시는 사물의 해설이 아니라 사물의 진실을 보여 준다. 심한 경우 관념시는 윤리적 분개, 정치적 제스츄어, 넋두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시에는 관념적 요소가 언제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문제는 이 관념적 요소와 특수한 시적 특성으로 드러나는 요소와의 관계에 있다. 시의 참된 특성은 언제나 언어사용의 특수성에서 발견되며, 형이상 시의 개념이 드러날 수 있는 계기 또한 이 언어 사용의 특수성에서 찾아지고 있다.


날 만지지 말라


붉은 꽃잎을 흔들며/설움으로 여윈 향기를 안고/진한 햇빛 속에서/오래 서있었다


햇빛은 시나브로/내 견고한 고독 속으로 스며들고/애증의 꼬투리는/그대의 무량한 뒷모습을 담는다.


그리하여 불현듯/주위가 하나의 배경으로/모호해지고 나면/사랑한다는 말은/더 이상 멸망이 아니게 된다


날 터뜨려다오


붉은 꽃잎을 흔들며/설움으로 익힌 향기로 웃으며/진한 햇빛 속으로/내 여윔을 띄운다


독자의 시 <봉숭아> 전문


위의 시를 살펴보면 3연가 4연에서 ‘견고한 고독’ ‘애증의 꼬투리’ ‘그대의 무량’등 관념에 빠져 있음을 본다. 그러기에 시는 딱딱해지고 객관적인 전달을 얻어내지 못하게 된다. 위의 시를 좀 더 객관화 시키기 위하여 몇 개의 낱말을 바꾸어 보면,


날 만지지 말라

붉은 꽃잎을 흔들며/눈물로 여윈 향기를 안고

진한 햇빛 속에서 오래

서있었다

햇빛은 시나브로

내 견고한 각질 속으로 스며들고

해 그리메의 꼬투리는

그대 뒷모습을 담는다

그리하여 불현듯

주위가 하나의 배경으로

깊어지고 나면

사랑한다는 말은

더 이상 숨바꼭질이 아니게 된다

날 터뜨려다오

붉은 꽃잎을 흔들며

설움으로 익힌 향기로 웃으며

진한 햇빛 속으로

내 여윔을 띄운다.


형이상 시는 무엇일까. 랜섬에 의하면 그것은 관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인간의 몸짓이라고 하였다. 시적 충동이 관념 때문에 자유롭지는 않으나, 시인은 자유를 즐기기 위하여 관념의 체계, 과학적 논리에 저항하는 것이며 사물의 이미지들과 인식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과학은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충동을 빛나게 하여 인식을 극소화 하지만 예술은 인식적 충동을 빛나게 하여 이성을 극소화 한다. 따라서 시인들에게는 많은 기교의 개발이 필요하게 된다. 여기에서 랜섬은 시를 쓰는 세 가지 기법으로 율격, 허구성, 언어의 비유적 사용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