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미투' 겁난다고 여자와 일 안 하겠다고?
박보희 기자 입력 2018.03.17. 05:02
[the L] [Law&Life-또 다른 성폭력 '펜스룰' ①] '여성'이란 이유로 업무상 불이익 땐 벌금.."오히려 소통 늘려야"
"직장내 성폭력이 문제이니 여성을 채용하지 말자."
"가급적 여자와는 일을 함께 하지 말자."
'미투'(Me too) 열풍 속에 이른바 '펜스룰'(Pence Rule)이 여성에 대한 또 다른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펜스룰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참석하지도 않는다"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이름을 딴 표현이다. 당초 여성과의 식사 또는 술 자리를 조심한다는 의미였지만, 최근에는 여성과의 접촉 자체를 자제한다는 의미로 확대됐다.
문제는 이런 펜스룰이 여성에겐 불리한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직장에서 '성별'을 이유로 여성을 채용, 승진, 업무 등에서 배제시키는 등 불리한 인사 조치를 할 경우 현행법상 범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여성이라고 업무상 불이익 땐 500만원 이하 벌금
사실 펜스룰이 쟁점으로 떠오르기 전부터 직장 내 성차별은 오랜 기간 문제로 지적돼왔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돼 시행 중인 이유다. 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등을 근거로 채용, 근로 조건 등에서 불리한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직무 성격 등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물론 법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된다. 직장 내에서 여성이 차별받는 경우가 더 많아 여성을 위한 법으로 인식되지만, 여성이 많은 직장에서 남성이 차별받을 경우에도 역시 법적 처벌 대상이 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37조에 따르면 채용시 남녀를 차별할 경우(제7조), 교육·배치·승진에서 남녀를 차별할 경우(제10조)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동일한 노동을 하는데 임금 차별을 할 경우(제8조)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정년·퇴직·해고에서 남녀를 차별한 경우(제11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조직이 성별을 이유로 조직원을 차별하는 행위는 종류에 따라 형사처벌까지 질 수 있는 무거운 죄라는 애기다. 성별을 이유로 업무의 연장선인 회식에서 특정 성별을 가진 직원을 제외할 경우, 성별을 이유로 업무 배치에서 제외할 경우 역시 성차별에 해당될 수 있다.
◇"위계관계에 의한 성폭력 막으려면 오히려 소통 늘려야"
펜스룰이 사회적 논란이 되는 것은 어떤 조직이든 고위층으로 갈수록 남성의 비중이 높은 현실에서 이들이 여성과의 접촉을 줄이는 것이 결국 여성들에게 불리함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7%(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남성이 여성을 배제할 경우 여성은 사회생활 전반에서 배제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페이스북의 COO(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도 "남성 임원이나 간부가 여성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그들이 여성을 피하고 제외하면 여성들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며 "여성들이 직장에서 가지는 기회를 줄어들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일반적인 범죄의 경우 가해자를 배제하는 것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성폭력은 반대다. 대다수 성폭력의 가해자인 남성이 아닌 피해자인 여성을 배제하는 방식의 펜스룰이 직장내 성폭력 대응 방안으로 논의되는 것 자체가 현재 직장내 권력 구조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짜여져 있는지를 방증한다는 지적도 있다. '펜스룰이 대안'이라는 인식에는 '피해자가 괜히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기업 임원 등 고위층의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펜스룰이 오히려 성폭력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성 상사와 부하 여성 직원 사이에 불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직장 내 성폭력은 권력 관계에 바탕에 둔다. 고위층으로 갈수록 부하 직원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성적으로 불쾌한 언행을 하려고 할 경우 부하직원이 이를 거부하면 성폭력을 막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남성 상사와 부하 여성 직원 사이에 소통을 바탕으로 일정 수준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김재희 변호사는 "남성들은 친근감의 의사 표시가 성폭력으로 오인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그렇다고 남녀가 관계를 끊으면 남녀간 소통이 단절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오히려 성폭력을 양산할 수 있다. 대립 구조는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문제는 성폭력이 발생하는 조직 문화인데,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하다"며 "이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등 조직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교육 등을 제공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보희 기자 tanbbang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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