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부처님도 버스 세 탕 뛰면 욕 나올걸요
[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버스 운전석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펴낸 허혁씨
좌회전 신호 대기에 걸리면 갈 수 있을까 없을까. 버스 기사는 바로 안다. 신호는 보통 15초. 맨 앞에 선 승용차가 밝은 색 소형이면 십중팔구 여성 운전자다. 안 됐지만 반응이 늦어 천천히 나가기 일쑤. 일곱 번째 있는 버스는 꼬리 물기를 해야 한다. 신호가 바뀌기 직전에 경적을 '빵-' 울린다. 스마트폰 그만 보고 나가자는 뜻이다. 다음 신호 받으려면 2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시말서 감이다. 내색을 안 해 그렇지 승객들도 얼마나 한심해할까. '기사가 어디 가서 죽도 못 얻어먹을 놈이네!'
버스 기사가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곤 했다. 신호 대기 중에도 쓰고 종점에서도 썼다. 2년치를 모아 출판사 50곳에 이메일로 투고했다. 반나절도 안 돼 "계약하자"는 연락이 왔다. 문학동네, 북이십일, 사계절, 휴머니스트를 비롯해 출판사 15곳은 한발 늦어 헛물을 켰다.
이달 출간된 에세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수오서재 刊)는 버스 운전석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다. 버스 기사가 왜 과속과 신호 위반을 일삼는지, 흐린 날에도 왜 선글라스를 쓰는지, 좀처럼 대꾸도 안 하고 왜 썰렁한 표정인지 알게 된다.
지난 14일 오후 전주 전일여객. 밤이면 시내버스 100대가 드러눕는다는 차고지가 텅 비어 있었다. 근무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나온 허혁(53)씨는 "모든 게 기적 같다"고 했다. "버스 운전만 하기도 벅차던 날 아내가 그랬어요. 당신이 들려준 버스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사람들이 뒤집어질 거라고. 내게 그토록 가혹했던 신이 왜 갑자기 후해졌을까. 이 책은 선물이 아니라 '선불' 같아요. 앞으로 착하게 살라는. 인간이 될 마지막 기회라는."
삶의 밑천은 빚, 그 덕에 출간
외할아버지가 시골 지관(地官)이었다. 사주를 보냈더니 "아무리 못 돼도 '사'자 들어가는 직업에 넥타이 매고 사람들 끌고 다니면서 큰소리치고 살 팔자이니 잘 키워라!" 하셨단다. '허 기사'로 불리며 하루 300~400명 태우고 다니니 영 틀리지는 않았다. 마흔여덟 살에 버스 기사로 인생을 갈아타기 전까진 18년간 가구점을 운영했다.
―가구점이 첫 직업이었나요.
"대학 철학과 졸업하고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했어요. 부모님이 가구점을 크게 했지만 뒤로는 밑지는 장사였지요. 그 일을 돕다 독립해 조그만 가구점을 열었는데, 부모님이 두 손 들고 잠수 타며 남긴 빚 3억원을 제가 떠안았어요. 살려고 발버둥쳤죠. 간신히 빚을 갚자 장사에 지쳐버렸습니다. 접고 대형 면허를 땄어요. 관광버스 2년 몰아 경력 쌓고 이제 시내버스 5년 차예요."
―왜 하필 버스에 끌렸는지요.
"장사할 때 화물차 택배 기사와 마주쳤는데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더라고요. 저거다! 뱃속 편하겠구나. 스트레스 안 받고 경쟁 안 해도 되니까요. 돈에 질려 돈을 졸업해버린 거죠. 좀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빚이 제 삶의 밑천이에요."
―빚이 어떻게 밑천이 되죠?
"뒤집어 생각하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까요. 이젠 돈을 좇지도, 돈에 끌려 다니지도 않아요.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책도 썼으니 젊은 날의 빚 덕이라고 생각해요. 대학 시절부터 글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버스 기사일 뿐이니 막 써도 뭐라 하지도 않을 테고요."
―해보니 버스 기사가 편한 직업이던가요.
"전혀요. 올 초까지는 격일로 하루 열여덟 시간씩 몰았어요. 노선마다 다르지만 10~12탕(왕복 5~6회)을 뛰는 거예요. 영혼을 갉아먹는 악마적인 노동입니다. 죽겠더라고요. 편한 사람은 글을 안 써요. 절박하면 글이 나옵니다. 2년 전 페이스북에 처음 자기소개 올릴 때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시내버스 기사입니다'라고 썼어요. 기사는 만인에게 을(乙)이고 승객은 갑(甲)의 눈으로 그들을 보잖아요. 승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오해를 풀려면 버스 기사를 위한 변명도 필요하겠다 싶어 글을 썼어요."
―'허 사장'으로 살다 '허 기사'가 됐는데.
"낙폭과 충격이 컸죠. 버스 기사로 벌이를 줄이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는데 이건 뭐 사람도 아닌 거예요.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어요. 사장, 고참, 승객과 싸워보니 결국 무시당하고 저만 피곤해지더라고요."
―책에는 ‘정해진 코스를 돌면 되니까 나에겐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썼더군요.
“힘들어서 그렇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실한 직업군은 버스 기사라고 저는 생각해요. 시간을 맞춰야 하고 설사가 나도 차를 못 세우잖아요. 기초대사까지 엄격히 관리합니다. 버스 기사는 경쟁 사회에 적응 잘 못하고 기질이 단순한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시내버스 3년은 돼야 이 꼴 저 꼴 다 본다’는 말이 있어요. 별일 다 겪고 보니 인격적으로 성숙해진 것 같아요. 이젠 글 쓰는 재미에 이 직업, 대통령하고도 안 바꿉니다.”
버스 기사들은 이상한 존재인가
문제는 대체로 버스 밖에서 시작되는데 엉뚱하게도 사고는 매번 기사와 승객 사이에 일어난다. 허씨는 “버스 운전석에 앉아 꼬와도 참아야 하는 세월을 보내면서 휩쓸리지 않고 무시할 줄 아는 힘이 생겼다”며 “내게는 시내버스가 대학”이라고 했다.
―누구든 운전대만 잡으면 성깔 나오지요.
“예수님, 부처님도 버스 세 탕 뛰면 욕하게 돼 있어요. 승용차도 그런데 버스 기사는 진상 승객에게 시달리잖아요. 출근할 때 간과 쓸개를 냉장고에 두고 나옵니다. 대꾸는 최소한만 해요. 운전하며 분노가 쌓인 상태에서 건드리면 말이 곱게 안 나가요. 손님한테 푸는 거죠.”
―그럼 어떻게 되나요.
“민원 들어가고 CCTV로 내 꼴을 보게 되고 반성문 쓰고 벌금 5만원 내고 친절 교육도 받지요. 저도 10번 들어갔어요. CCTV 볼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요. 내가 인간이 아니었구나. 개[犬]였구나.”
―버스 기사의 선글라스와 마스크가 다른 용도일 줄은 몰랐어요.
“선글라스는 표정 관리 안 돼 민망해서고요, 마스크는 욕 나오려고 할 때 막아줍니다. 심리적 안정이랄까 익명성이 보장돼요. 제 모습을 친구나 가족이 볼 수도 있잖아요. 남이 운전하는 버스에 승객으로 타면 심란해져요. 내가 저렇게 난폭하구나, 하차 벨 잘못 눌렀다고 욕하는구나, 반면교사로 삼는 거죠.”
―라디오 볼륨이 기사의 스트레스 수치라고요?
“전화하는 소리 듣기 싫으니까 맞대응하는 겁니다. 이어폰을 껴야 마땅하지만 승객이 물어올 때 못 듣고 운전은 청각으로도 하잖아요. 위험해서 귀는 못 틀어막죠. 라디오 볼륨은 일종의 소리 커튼입니다.”
―버스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승객이 최악인가요.
“생업을 조롱당하는 느낌입니다. 남자 화장실에서 아주머니가 청소할 때 다들 무시하잖아요. 저는 투명인간의 서러움을 아니까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오줌 좀 쌀게요’ 인사를 합니다. 사람 취급을 해줘야죠. 버스 기사는 ×무시당하는 게 제일 서러워요. 남 생각은 안 하고 ‘추운데 에어컨 좀 꺼주세요’ 하는 승객도 진상이고요.”
―걸핏하면 과속하고 신호 위반하고, 정류장 조금 벗어났다고 문 안 열어주고, 행선지 물으면 화를 내는 사나운 버스 기사도 적지 않은데요.
“사람에겐 한계가 있잖아요. 우리가 고매한 인격자도 아니고요. 대체로 막살아온 사람, 상처가 많은 사람이 버스를 몹니다. 시내버스 영업 비밀 중 하나는 막 내달려야 사고도 없고 기사도 편하다는 거예요. 운전석에 앉으면 감정이 널뛰기를 해요. 상태가 좋을 땐 부드럽게 운전하지만 분이 쌓이고 안 좋을 땐 우당탕탕 푸는 겁니다. 여건이 그렇게 만들지, 원래 나쁜 기사는 없어요. 저도 오전에는 선진국 기사,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기사, 밤에는 후진국 기사가 돼요.”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하루 18시간 버스를 몰면 육체노동으로 지치고 감정 노동으로 화가 끓어요. 요즘엔 하루 2교대(8시간)로 일하니 여유가 생기고 덕담도 주고받게 됩니다. 밤에 아주머니가 타면 ‘아따 이 시간까지 놀다 어디 가셔? 빨리 아저씨 밥 차려줘야지~’ 해요. 손님도 저도 웃지요. 그 훈심으로 또 30분은 화가 안 나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잖아요.”
―얼마나 성숙해졌는지요.
“자신을 더 낮추는 겁니다. 시비 따지려 들면 운전 못 해요. 에고(ego·자아)를 버리면서 흐물흐물해졌어요. 버스 기사들이 대개는 ‘가면형 우울’로 가요. 참았다가 술집이나 각시한테 가서 사고를 칩니다. 저는 글로 우회했었어요. 차라리 내가 훌륭해져 버리자. 측은지심으로 가면 빠져나올 수 있어요.”
“아빠, 더 이상 발전하지 마”
부인은 전주한옥마을 문화해설사, 딸은 스타벅스 장애인 바리스타, 아들은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대학생이라고 했다. 허씨는 “부부싸움을 하면 ‘조선 천지에 당신같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시건방진 사람도 드물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나를 송두리째 부정당했다고 느끼니까 다투는 건데, 부분적 팩트(사실)로 받아들이면 분리할 힘이 생긴다”고 했다.
―따님은 어디가 불편한가요.
“경계성 지적 장애가 있어요. 저산소증을 겪고 태어나 뇌 세포를 좀 다친 거예요. 직감은 빼어나요.”
―서문에 따님이 한 말을 적었더군요.
“‘아빠 더 이상 발전하지 마. 절대 노력하지 말고 그냥 버스를 즐겨!’ 아빠가 더 발전해버리면 같이 영화 보는 재미마저 잃어버릴까 하는 걱정이죠. 노력하는 모습 보이기 싫어 방문 걸어 잠그고 글을 썼어요.”
―영화 ‘패터슨’ 보셨지요? 주인공 패터슨은 뉴욕 인근 도시의 버스 기사이면서 틈틈이 시를 쓰는 데요.
“빽이 좋은지, 패터슨은 정시에 출퇴근하더라고요(웃음). 저도 요즘엔 오전반이나 오후반으로만 일하며 패터슨처럼 살아요. 저녁이 있는 삶이죠. 글을 쓸 시간도 많아졌고요. 아침에 쓰고 출근해 운전하며 퇴고하다 보면 글이 완성돼 있어요. 버스 모는 동생들에게 ‘한방에 읽히냐’ 묻고 ‘아니다’ 하면 재빨리 수정하고요.”
―책 제목은 어떻게 지었습니까.
“영화 ‘패터슨’에 나와요. 일본인 여행자가 그에게 시인이냐고 물을 때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답하지요. 삶의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에 있어요. 미국에도 저 같은 버스 기사가 있어 기뻤습니다.”
―운전할 때 융통성도 생겼나요?
“승객이 딱 봐서 일흔 살 이하면 ‘가요, 잉!’ 하고, 배려해야 할 땐 ‘얼래, 버스가 갑자기 왜 이러지’라며 시간을 끕니다. 의식주 다음은 이동권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게 보람이지요. 겨울엔 새벽에 빌딩이나 식당에 일하러 나가는 누이들, 가는 동안이라도 몸 덥혀주고 싶어 훈김을 빵빵하게 올려놓아요.”
―책에 ‘전주 시내버스는 결손 가정’이라고 썼더군요.
“승객은 노인과 학생이 대부분이에요. 노인이 길을 몰라 묻는 게 아니고, 청년이 꼭 음악을 들으려고 이어폰을 끼는 게 아닙니다. 지독하게 외로운 사람들이 보내오는 구조 요청을 보곤 해요. 혼잣말, 하품, 헛기침, 비명….”
―작가로선 이제 막 버스에 올라탄 셈입니다.
“통섭이 중요하다 하잖아요. 부자와 서민이 서로를 이해해야죠. 정직하게 노동하면서 바닥의 삶을 글로 옮기고 싶어요. 몸이 아니라 머리로 쓸 땐 주둥빼기(입) 닥치고 펜도 꺾을 겁니다.”
―종점은 어디쯤일까요.
“정치하는 애들하고는 말을 안 섞어요. 빵(감옥) 갔다 온 걸 평생 우려먹으며 시민단체 들락거리는 ‘입 진보’들. 생계에 대해 고민한 적 없고 무릎 꿇고 빌어본 적도 없는 놈들이지요. ‘각시 그만 등쳐먹고, 세금 그만 축내라’ 말하고 싶어요. 저는 문학이 권력이라고 생각해요. 먹고 사느라 글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써 나갈 겁니다.”
종일 비가 온 날, 전화로 전주 하늘은 어떠냐 물으니 “예쁘게 흐린데 너무 시커멓진 않다”고 했다. 오늘도 그는 381번을 몰고 농협공판장~우석대를 5~6탕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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