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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택한 개..아파트 안이라도 행복하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8. 11. 1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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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택한 개..아파트 안이라도 행복하다

입력 2018.11.19. 15:16 수정 2018.11.19. 16:16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1만~4만년 인간 사회에 스스로 합류..늑대 본성 퇴화·사냥 등 역할 감소
개는 야생서 길러야?..인간과의 교감 절실한데 '마당 생활'이 행복할까

[한겨레]

아파트에 있는 게 답답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건 인간의 생각일 뿐, 늑대의 본성이 이미 퇴화된 개들로서는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상호 교감하는 게 훨씬 더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물은 원래 야생에서 키우는 게 본성에 맞습니다.”

“개를 아파트에서 키우는 자체가 학대 아닌가요? 사람들의 이기심이란.”

개에 관해 글을 쓰면 가끔씩 달리는 댓글이다. 꼭 이웃집 개 때문에 피해를 봐서가 아니라, 실제로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나 역시 리트리버처럼 큰 강아지가 좁은 아파트에 있는 걸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생각. 정말 개들도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어할까?

돼지와 개, 서로 다른 삶

돼지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돼지의 기원은 야생 멧돼지로, 9000년 전쯤 인간에게 붙잡혀 가축이 됐다. 인간 옆에 있는다고 돼지가 누리는 것은 별로 없다. 원래 돼지는 호기심이 많고 사교성도 뛰어난 동물이다. 그럼에도 돼지는 몸을 돌리지도 못할만큼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됐는데 많은 돼지들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극심한 좌절과 절망을 드러낸다고 한다.

견주가 주로 있는 곳에 개집을 갖다 놓으면 개가 안정감을 느끼며 잘 수 있다.

이런 시련을 견딘 뒤 좋은 날이 오면 그나마 낫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돼지의 운명은 적당히 살이 올랐을 때 도축돼 돼지고기가 되는 것이다. 돼지가 없었다면 회식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인간은 마땅히 돼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돼지를 먹는 것만 밝히는 동물이라며 비하하기 일쑤다. 어쩌면 우리에 갇힌 돼지들은 “그 당시 왜 저항하지 않았냐?”며 조상들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는 좀 다르다.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가 쓴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을 보면 개는 한낱 ‘포로’인 돼지와 그 출발선이 달랐단다. “개는 1만~4만년 전에 자신의 의지로 인간을 동반자로 선택해 인간 사회에 합류했다.” 개가 인간을 선택한 이유로 가장 유력한 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란다. 털이 있으니 사람만큼은 아니겠지만 개는 추위를 타며 지속적으로 추위에 노출되면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실외에만 개집이 있으란 법은 없다.

게다가 몇만 년 전에는 지구의 온도가 지금보다 더 낮았고 이따금씩 빙하기가 지구를 덮쳤다. 불을 사용하는 종은 오직 인간밖에 없었기에 늑대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인간에게 다가간 것이 개의 효시다. 덕분에 개는 따뜻함과 더불어 안정적인 식사를 제공받게 됐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었고 개들 또한 날로 먹을 마음은 없었다. 개들은 사람들의 사냥을 도왔고 밤에는 보초를 서며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줬다. 양떼를 돌보기도 하고 수레나 썰매를 끌기도 했다. 인간이 먹을 게 없었을 땐 부득이하게 식량이 되기도 했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개들의 역할은 시나브로 줄어들었다. 차가 있으니 더 이상 개가 짐을 나를 필요가 없어졌고 경비 시스템이 강화돼 보초를 설 필요도 없게 됐다. 개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인간에게서 버려진다면 먹을 것을 찾아 산간벽지를 헤매야 하는데 혼자 사냥하는 기술은 이미 퇴화한 지 오래고 인간들의 남획으로 인해 잡아먹을 만한 동물도 별로 없었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개들의 역할은 시나브로 줄어들었다. 차가 있으니 더 이상 개가 짐을 나를 필요가 없어졌고 경비 시스템이 강화돼 보초를 설 필요도 없게 됐다. 클립아트코리아

안되겠다 싶었던 개들은 인간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공을 물어오는 등의 묘기를 선보임으로써 생존을 도모했다. 수많은 인간들이 개의 전략에 넘어갔는데, 이 전략은 제법 성공적이어서 개들은 더 이상 생산적인 일을 안 해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바야흐로 ‘견생 시즌 2’가 펼쳐진 셈이다.

인간들은 집에서 기르기 좋게 더 작고 더 예쁜 강아지들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냈다. 사랑받는 것에만 특화된 그 개들은 낯선 사람이 들어와도 짖기는커녕 예뻐해 달라고 꼬리를 흔들어댔다. 늘 사람만 바라보며 사는 삶, 좀 비굴해 보일지언정 자연 상태에 있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았다.

개가 인간 다음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된 것도 개들이 10년을 넘어 20년까지 살 수 있게 된 것도 다 인간의 보살핌 덕분이리라. 추위는 물론이고 더위까지 타는 우리집 개들이 야생에 있었다면 기록적인 더위가 전국을 강타한 지난 여름을 넘기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같이 귀화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야생에 남은 늑대들의 냉혹한 현실을 떠올려보면 인간을 택한 조상들의 선택에 감사할 일이다.

‘마당개’는 행복할까

사정이 이런데도 개를 야생에서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다. 아파트에 있는 게 답답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건 인간의 생각일 뿐, 늑대의 본성이 이미 퇴화된 개들로서는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상호 교감하는 게 훨씬 더 좋다. 설령 그게 좁은 아파트라도 개로선 별 상관이 없다. 몇 평 안되는 원룸이라 할지라도 주인만 같이 있어 준다면 행복한 게 바로 개니까 말이다.

‘개=야생’이란 인식 때문인지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개를 마당에서 기르는 집이 있다. 개가 커서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한다 해도 목줄까지 묶어놓고 키우는 건 너무 잔인하다. 클립아트코리아

실제로 미국에는 마당이 있는 집이 많지만 대부분의 개는 실내에서 길러진다. 밤중에 개를 밖에 두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주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개=야생’이란 인식 때문인지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개를 마당에서 기르는 집이 있다. 개가 커서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한다 해도 목줄까지 묶어놓고 키우는 건 너무 잔인하다.

내가 즐겨 가는 식당의 옆집도 바로 그런 경우인데, 짧은 줄에 묶인 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그 개를 보면 그저 안쓰럽다. 어쩌면 그 개는 ‘이럴 거면 차라리 야생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개를 묶어놓고 키우는 견주님들, 개는 인간의 사랑을 먹고 삽니다. 그러실 거면 다음부터는 절대 개 키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