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4호선 노원역 - 대추 한 알 / 장석주)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시집『붉디 붉은 호랑이』(애지, 2005)
(『서울 지하철 시』. 4호선 노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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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안 읽는다고 시가 독자와 멀어졌다고 한다. 대형서점에 가도 시집은 한쪽 구석을 차지한지 오래다. 시집을 내면 시인들끼리 품앗이하듯 돌려본다. 그런데도 시는 봄날 벌레보다도 많고 가을날 열매보다도 풍년이다. 몇 년 전부터는 지하철역에도 시가 등장을 했다. 실수로 철로로 떨어지거나 때로는 자살하려 뛰어드는 사람을 방지하고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부터 시가 등장을 한 것이다. 성격상 잠시 차를 기다리는 동안 읽을 수 있는 간결하고 짧은 시이지만 상업광고 홍수시대에 광고 대신 시를 보는 것이 백 번 낫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유심히 서서 읽어보는 사람들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는 궁핍의 산물이라고 한다. 시가 백수의 놀음이라는 말처럼 궁핍이란 물질의 부족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모름지기 사물을 놀람과 신비 측은지심으로 봐야지 효능과 용도를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보고 저 놈을 회쳐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거나 식물을 보면서 몸 어디에 좋고 어떻게 먹으면 약이 된다는 효능과 음용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어찌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맛과 효능과 용도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뿐 대추 한 알 속에 태풍이 들어있고 천둥이 들어있고 벼락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대추 속에 무서리와 땡볕과 초승달이 다녀간 것을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