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는 국어사전이 없다
김혁분
- 물을 아껴 씁시다 -
목욕탕 안에서
한 여인이 씻고 있어
코끼리 같은 몸으로
어디서 물 좀 써 봤다는 듯 샤워기를 틀어놓고
몸에 물이 닿자 폭포가 생겼어
가슴에서 1단 배에서 2단 그 아래로 3단
3단 폭포가 몸을 약간 구부리자 2단으로 변신했어
나는 그 옆에서 빈약한 가슴을 가리며
젖탱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고 싶었어
코끼리처럼 쿵쿵거리며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여인은 분명 정글 숲에 있었어
검은 수풀을 헤집으며
정글 숲을 지나가고 있었어
나는 정글 숲을 돌아서 가며
물은 물 쓰듯 써 버려야한다고 오늘 한 수 또 배웠지
- 물을 아껴 씁시다 -
목욕탕에는 국어사전이 없었어
―시집『목욕탕에는 국어사전이 없다』 (지혜, 2019)
----------------
며칠 전 코로나119로 중국으로 들어가려던 러시아산 킹크랩 선박이 국내로 들어와 가격이 폭락했다고 하니 사람들이 몰렸던 것처럼 한때 반신욕이 사회의 병리현상처럼 티브에서 한번 떠들고 나면 혹시나 나도 하면서 따라 해보게 된다. 나 역시도 만능통치약인 것처럼 따라서 매일 목욕탕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뿐 아니라 지금도 가끔 보지만 물을 헤프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면도를 하면서 면도가 끝날 때까지 계속 물을 콸콸콸 틀어놓고 있는 사람이다. 또 어떤 젊은 사람은 머리를 20번도 더 헹구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장난을 치나 싶어 지켜보았더니 받은 물을 삼푸하고 붓고 린스하고 붓고 계속 들이붓고 있었다. 자기 집 물이라면 저렇게 쓸까, 관리인도 아니면서 물을 아껴 쓰세요 할 수도 없고. 에라이, 다음 생은 물 부족한 나라 아프리카 어디쯤에서 태어나 물 때문에 고통 받으시라 속으로 중얼중얼 거리고 마는데.
시에서 화자도 나처럼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 물을 아껴 씁시다 - 글씨 앞에서 물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천불이 나는 모양이다. 말을 하자니 싸움이 날 것도 같고 결국은 저 사람은 한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치부를 해버리고 만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물을 아껴 쓰자는 글이 빤히 지켜보고 있는 데서 어찌 물을 물 쓰듯 하겠는가...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의 여자 /정운희 (0) | 2020.03.04 |
---|---|
수화기 속의 여자 /이명윤 (0) | 2020.03.04 |
빈 자리가 가렵다 /이재무 (0) | 2020.03.04 |
사랑의 강(1 )/이성희 (0) | 2020.02.28 |
김씨 /임희구 (0) | 2020.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