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
김사인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살 더 먹은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에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짝 당겨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테만 화풀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들 보니
눈물 핑 돈다
―시집『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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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형제
초등학교 1, 2학년 애들이려나
광주시 연제동 연꽃마을 목욕탕―
키가 큰 여덟 살쯤의 형이란 녀석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여섯 살쯤 아우를
때밀이용 배드 위에 벌러덩 눕혀 놓고서
엉덩이, 어깨, 발바닥, 배, 사타구니 구석까지
손을 넣어 마치 그의 어미처럼 닦아주고 있었다
불알 두 쪽도 예쁘게 반짝반짝 닦아주는 것이었다
그게 보기에도 영 좋아 오래도록 바라보던 나는
"형제여! 늙어 죽는 날까지 서로 그렇게 살아라!"
중얼거려주다가 갑자기 눈문 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시집『창작과비평』 (2001년 겨울호)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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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시인의 ‘오누이‘ 시를 읽다가 이 시보다 먼저 알게 된 김준태 시인의 ’형제‘ 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어느 시가 먼저 쓰여 지고 발표 된지는 모르지만 형제 시를 먼저 읽게 되었고 오누이 시를 나중에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형'제' 이고 하나는 '오누이' 가 소재지만 형제와 오누이 사이의 자분자분한 모양새가 미소를 짓게 합니다. 형만 한 아우 없다 는 속담처럼 겨우 한두 살 더 먹은 형이 어미를 대신하여 동생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는 모양새가 어설프기보다 의젓하고 좁은 자리를 둘이 같이 앉자고 하는 여동생의 어줍한 행동이 어여쁘기만 합니다.
형과 아우, 오라비와 여동생의 도타운 정이 가슴이 뭉클해지며 그늘진 곳의 따사한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시를 읽는 내내 마음 속까지 훈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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