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튀기’와 ‘펑펑이’
“뻥이요!”
튀밥 장수 아저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고샅에 울려 퍼지면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쌀이며 보리, 강냉이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모여든다. 아이들은 하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바람이 난다. 먹을 것이 귀했던 그 시절에 ‘튀밥’은 최고의 간식이었다. 지금도 시골장의 한구석에는 튀밥 장수들이 이따금 판을 펴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순서를 기다리는 보따리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그 정겹던 풍경들은 우리들 기억 속에서조차 조금씩 잊혀 가고 있다.
- 아버지는 이 동네 저 동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뻥튀기} 장사를 했다. 동네 공터에 자리잡고 앉아 쌀이나 옥수수를 넣은 뒤 로켓처럼 생긴 기계를 돌렸다. 아버지가 풍구를 부쳐가며 돌리는 동안 아이들은 귀를 막은 채 ‘뻥이요’ 하고 아버지가 어서 외쳐주기를 기다렸다. 로켓이 발사되는 순간처럼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면 기계 뒤쪽에 쳐놓은 철그물에 {튀밥이나} {강냉이가} 눈꽃처럼 쏟아져나왔다. 아이들은 구멍난 철망 사이로 새어나온 {강냉이를} 주워먹으며 사카린이 내는 단맛에 즐거워했고 수십 배 불어난 {튀밥을} 한아름 안고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행복해보였다. 《김규나(2010): 뿌따뽕빠리의 귀환》 (남)
‘쌀이나 옥수수 등을 부풀려 만든 과자’인 ‘뻥튀기’와 ‘튀밥’. ‘뻥튀기’는 북한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며, ‘튀밥’은 남북이 함께 쓰지만 그 의미는 좀 다르다. 남한에서 ‘튀밥’은 쌀로 튀긴 것과 옥수수로 튀긴 것을 두루 이르는 말이지만 북한에서 ‘튀밥’은 쌀로 튀긴 것만을 이른다. 북한에서 남한의 ‘튀밥’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은 ‘튀기’이다. ‘튀기’는 동사 ‘튀-’와 명사 파생 접미사 ‘-기’가 결합된 파생어이다. ‘튀밥, 튀기’는 그것이 갖는 뜻바탕은 같지만 어디서 쓰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남한에서 ‘강냉이’는 김규나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옥수수의 낟알이나 그것을 튀긴 것’만을 뜻하는 말이지만, 북한에서는 식물의 이름이나 그 열매 즉, 옥수수 그 자체만을 나타낸다. 반면 남한에서 식물을 지칭할 때는 강냉이도 더러 쓰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옥수수가 쓰인다.
- 집 뒤편 텃밭에 {옥수수가}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황석영(1975):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 (남)
- 계절에 따라 찐 고구마나 삶은 옥수수, 구운 오징어나 팝콘, {강냉이나} 뻥과자가 주요 취급 품목이다. 《강영숙(2002): 봄밤》 (남)
- 이 모든 제방뚝에 나무 없는곳이면 어디나 {강냉이} 아니면 콩을 심었다.
《유진국(1980): 서해안을 따라서》 (북)
북한에서 ‘강냉이를 튀긴 것’은 ‘강냉이과자, 강낭과자, 옥수수과자, 펑펑이’라고 부른다. 동네 고샅에 모여, 또는 장마당에 모여 ‘튀기’를 튀는 풍경들은 북한에서도 점차 사라지는 모양이다.
- 중심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사창장마당의 독특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돌았다.
군밤, 군고구마 냄새에 섞어 {펑펑이가} 튀는 소리, 땅바닥으로 깔려도는 기름타는 냄새, 구수한 갈비국냄새… 《석윤기(1985): 추억》 (북)
북한 소설에 나타나는 ‘펑펑이’는 ‘튀기(남한의 튀밥)’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튀밥을 튈 때 나는 소리 ‘펑펑’에 명사 파생 접미사 ‘-이’가 결합된 말로 남한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포 사회에서도 생소한 말이다.
‘펑펑이’는 북한에서 ‘튀기’ 이외에 다른 뜻으로도 쓰이는 경우도 찾아 볼 수 있다.
- 개구리들이 요란스레 울어예는 논벌에는 논물보는 사람들이 들고다니는 홰불이 반디불처럼 오락가락하고 얼굴에 단김을 끼얹는 메마른 밥공기를 휘저으며 논물푸는 수차며 {펑펑이의} 물소리가 들려왔다. 《변희근(1978): 생명수》 (북)
위의 북한 소설에 나타난 ‘펑펑이’는 ‘양수기’이다. 양수기가 물을 끌어올려 펑펑 나오게 하는 것이라는 데서 착안된 말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 역시 남한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다. 북한에서 ‘펑펑이’는 ‘튀기’, ‘양수기’ 이외에도 ‘깔때기’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 난로를 끼고 둘러앉았던 사람들은 {펑펑이처럼} 생긴 난로아구리에 톱밥을 쏟아넣어주는 춘희에게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최종현(1976): 눈길》 (북)
‘펑펑이’가 왜 ‘깔때기’를 의미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튀밥 기계의 꽁무니에 대고 튀밥을 받아내는 ‘철그물’의 모양 때문에 깔때기를 의미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오늘 저녁엔 ‘펑펑이’가 됐든 ‘뻥튀기’가 됐든 추억의 간식 한 자루 사들고 집에 들어가는 것은 어떨지….
글: 이길재(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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