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삼류 /이이화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12. 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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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이이화

 

 

칼바람 한 귀퉁이 꺾어

오랜 동반자 삼아 어깨에 메고

지난밤 잠시 말아두었던 길을

새벽 어둠 속에 펼쳐 놓는다

찢겨진 잠에서 뛰어나온

코딱지만 점포가 달려와

하루치 셋값을 선금으로

계산하느라 분주해지면

동대문 어느 여공의

거친 손을 쓰다듬다가

박음질로 달려온

시장표라는 이름의 옷이

보푸라기꽃 피워 낼

주인공을 기다린다

비쌀수록 없어서 못 판다는

백화점 명품관에서

클래식 음악이 고상하게

일류 고객을 위해 목청을 높이는 동안

시장 바닥의 질척한 삶은

더 깊은 언더그라운드 속에 갇히곤 한다

학습된 유산도 변변한 취향도

정착하지 못해 빈 가지처럼

마구 흔들리는 날

소주 한 병과 안주로 곁들인

뽕짝 가가 한 구절에 입맛이 돌아

마시고 또 마시던 하급의 노래들

찾아오는 단골손님의

얇은 지갑마다 걱정이 앞서

물건값으로 건네주는 몇 푼 돈 앞에

그저 죄송하기만 한 나는,

허술함을 사고파는

삼류자영업자다

 

 

 

―계간『詩하늘/통권 100호 특집』(2020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