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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돌을 읽다 /허정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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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돌을 읽다

 

허정진

 

 

고향 집 우물가에 등 굽은 검은 숫돌

지문이 없어지듯 닳고 닳은 오목 가슴

그리움 피고 지는 듯 마른버짐 돋는다

 

대장간 불내 나는 조선낫 집어 들고

제 몸을 깎여가며 시퍼런 날 세우면

뽀얗게 쌀뜨물일 듯 삭여가는 등뼈들

 

새벽녘 고요 깨고 쓱싹대는 숫돌 소리

가만한 한숨처럼 은결든 울음처럼

짐 진 삶 견디어 내는 낮고 느린 수리성

 

묵직한 중량감 든든한 무게 중심

자식들 앞날 위해 새우잠 참아내며

평생을 여백으로 산 아버지를 읽는다

 

 

 

[2021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