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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3 출근 길
조우숙
같은 칸 지하철을 타면 낯 익은 얼굴 두어 사람
눈도장 몇 번 쌓이고 목례도 건넨다
나보다 몇 역을 늦게 타는 그녀를 만나면
통증에 자꾸 손이 가는 그녀의 아픈 허리
걱정 되어 먼저 내리는 나는 자리도 넘겨주고
도시락 가방도 받아주니
때로는 뒷모습만 보고도
내 등에 다정히 노크하며 아는 체한다
화정부터 구파발까지 더러는 지상 구간
호위병 나무와 하늘 봄날 흐드러진 벚꽃
차창을 긋는 비까지 그림이 되는
북한산 원효 의상봉 맑은 자태는
고요한 먼 눈길로 우리에게 악수를 청한다
오늘도 산처럼 의연하길 응원해 주는
녹번역으로 내려오고 올라가는 사람들
고사리손 잡은 은평초 보내는 보호자들
할아버지 때로는 엄마 아빠 누나들 저절로 알게 되고
패션이 늘 화려하며 단정한 아가씨
눈 화장 도드라지게 하는 중년 직장 여성
은평로 21길에서는 원치 않아도 집까지 알게 되는
개인정보 열리는 출근길
말 건네지 않아도 각자 분주한 발걸음은
엔진 같은 힘이 솟는 아침이다
⸺계간『詩하늘/통권 100호 특집』(202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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