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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이영옥
안개에 싸인 적산가옥
집필실 나무 계단은 봄비처럼 앓고
문을 열어줘도 탈출하는 이가 없는 감옥에는
글 쓰는 일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배정받은 방에서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산다는 건 견딘 부분만 튀어나오는 법이라서
부둣가에서는 가끔 거친 고함이 날아든다
신념이 독이 되는 세상
지칠 일 밖에 남지 않은 유랑자들이
불안한 선잠을 모니터 앞에 쏟는다
젖은 벚꽃 한 장이 창문에 달라붙어
다른 계절을 말하는데
글이야 다시 고쳐 쓸 수 있지만
어디부터 손 봐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방주인
이젠 잃을 길조차 없는 길을
허전한 달 하나가
내려다보는 봄밤
―월간『상상인 창간호』(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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