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봄밤 /이영옥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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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이영옥

 

 

​안개에 싸인 적산가옥

집필실 나무 계단은 봄비처럼 앓고

 

문을 열어줘도 탈출하는 이가 없는 감옥에는

글 쓰는 일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배정받은 방에서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산다는 건 견딘 부분만 튀어나오는 법이라서

부둣가에서는 가끔 거친 고함이 날아든다

 

신념이 독이 되는 세상

지칠 일 밖에 남지 않은 유랑자들이

불안한 선잠을 모니터 앞에 쏟는다

 

젖은 벚꽃 한 장이 창문에 달라붙어

다른 계절을 말하는데

글이야 다시 고쳐 쓸 수 있지만

어디부터 손 봐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방주인

 

이젠 잃을 길조차 없는 길을

허전한 달 하나가

내려다보는 봄밤

 

 

 

―월간『상상인 창간호』(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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