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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
홍일표
몸을 비우고
허공처럼 앉아 있다
크고 둥근 극장
물로 빚은
물렁물렁한 무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너는 물속에서 금빛 아가미를 달고 숨 쉰다 한 번도 본 적 없으나 초음파처럼 휘파람으로 오기도 하고 물의 뱃가죽을 쓸어내는 바람의 섬섬옥수로 오기도 한다
어떤 기미는 죽음 너머에서 온다
검거나 붉은 색깔은
기억을 지우고 흩어져
하늘은 온통 눈보라
무주고혼들이 소리 없이 내려와 물 한 모금 삼키고 사라진다
나는 모른다 너를 모르고 너의 미래도 몰라서 나는 다만 한 마리 짐승처럼 네 앞에 웅크리고 있다
시간 너머에서 닫힌 네가 열린다
물을 찢으며
섬광처럼 튀어오르는 물고기
하늘이 길게 휘어져 팽팽해지는
온몸 푸르른 날이 있다
뒷전의 바위들도 몸속의 새를 꺼내어 훨훨 날아오르는
―시집『중세를 적다』(민음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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