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깊이 /이인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1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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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이인주

 

 

당신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길이 있다

 

바늘구멍에서 시작된

심방을 엿보는 각방

 

구멍은 소문이라는 배율을 낳고

구멍은 자해라는 무덤을 낳고

 

주둥이 터진 말이 밑 빠진 독과 등가일 때

고독은 늙어간다 오독으로 불어난 허기가

굴참나무 가지 끝 하늘마당에 걸리면

온갖 별들이 공중돌기를 한다

질시와 편견 사이 나무를 흔든다

 

빠지면 죽는 절구통인 줄 모르고

알몸으로 뛰어내리는

도토리

 

그 무구를 흠모라 부르는가

당신도 견디고 나도 견디는

 

서로 놀란 등을 맞대고

깎고 또 깎아 만드는 자수정

가장 깊은 밤의 광채를,

 

나는 알지만 당신은 모르는 길이 있다

 

 

―계간『애지』(2020,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