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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홍일표
북극에서 가져오지 못한 노래가 있다
고작 사진 몇 장 챙겨 들고 와서
여긴 북극이야라고 말할 때
입안에 날리는 자욱한 먼지들
길게 울부짖던 야생의 어둠들
너무 먼 곳의 사랑이라고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노래라고
서랍 속에 밀어 넣을 때
내 안에서 펴지지 않는 밤을 뒤적여 보지만
늑대 한 마리 나타나지 않는
희박한 공기로 삐걱거리는 곳
빨래를 널던 여자는 나무집게 하나 들고
여기 늑대가 있네
주둥이 뾰족한 사랑이 있네
컹컹 짖지도 못하고
거칠게 물어뜯지도 못하는
머리통만 남은 짐승
먹이 하나 물려주면 온종일 조용한,
피 한 방울 남지 않은 늑대
오고 가고
가고 오는
다 닳은 구두 밑창처럼 지루한 나날의 이야기
머나먼 사랑인 척 간신히 눈이 내리는데
갑자기 생각난 듯 드문드문 눈송이 날리는데
-월간『현대문학』(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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