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죽록원에서 /정진용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3. 3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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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록원에서

 

정진용

 

 

대나무 마디마다 곳간 있어

곳간마다 바람 그득합니다

멀리서 가슴 에인 사람 찾아오면

동행하면서 그 날숨 맡은 바람이

사람 앞질러 그 아픔 대숲에 알리고

모든 대나무는 마디마디 빗장 풀어

홧홧 가슴 솨 솨 쓸어주는데

대나무 마디마다 텅텅 배려없었다면

세상 서러운 사람 눈물 뿌릴 때

함께 울어줄 바람 간수 못 했을 터,

남몰래 풀어야 할 서러움이나

홀로 삭여야 할 느꺼움 있다면

그대, 가까운 대숲 찾으시지요

마디마디 여백 널따란 대나무는

멀리서부터 그대 습한 눈빛 알아보고

솨 솨 솨 가슴 먼저 달래줄 테니,

마디마디 그대 울음 거둬

땅 속 깊숙이 잘 묻어줄 테니

 

 

 

ㅡ시집버릴 게 없어 버릴 것만 남았다(바른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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