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무료와 유료 사이 /김서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4. 2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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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와 유료 사이

 

김서하

 

관람료 없는 꽃길을 지나 전시회를 간다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계절을 큐레이터는 어떻게 설명할지

미술관 초입의 왕벚나무, 노숙하는 봄은 무료다

표구된 풍경에 값을 지불한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살아 숨 쉬는 늦봄의 풍경화를 지나친 그들

눈 내리는 마을* 입구에 아는 척 몰려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멍하니 바라보거나,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그림을 재구성한다

컬러와 구도를 장황하게 풀어 놓는 해설가

도록에 없는 생생한 봄은 모른 척 넘긴다

관람객 하나 장미 넝쿨을 통과해

정지된 해바라기에 입장료를 지불한다

금방이라도 분(粉)이 묻어날 것 같은 액자에 갇힌 나비

산책로를 따라

부전나비 한 마리 날아간다

개화순서에 따라 앞자리 또는 뒷자리에 피는 야생화

오늘의 영산홍이 내일의 영산홍이 아닌데

감상객들

일생일대의 명작을 놓친다

제비꽃이 4월에 낙관을 찍으면

어떤 방부제도 보존 불가한 봄이 진다

 

*러시아 출신의 화가 마르크 샤갈의 작품 이름.

 

⸺『착각의 시학』(2017.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