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네 눈물은 신의 발등에 떨어질 거야 /김태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5. 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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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물은 신의 발등에 떨어질 거야

 

김태형

 

 

잔물결 하나 없이 고요할 수는 없다

삼엽충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삼엽충을 생각했을까

누군가 가만히 오래된 물결에 손을 내밀다 말고

돌을 고른다

나는 빈 물결만 바라보고 있다

지금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다

 

달이 떠오르기 전에 잠시

어둠이 펼쳐지겠지

며칠은 내내 그랬으니까

유라크 나무 사이의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사내가

곧 달이 뜰 거라고 말했으니까

어젯밤 옥상 위에서

오래된 밤을 바라보았으니까

누가 나를 꿈꾸기를

 

작은 돌들이 물결에 떠오르다 말고 가라앉았다

지금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뿐

젖은 돌은 젖은 돌이 되려 하고

줄기러기는 줄기러기로 떠나갔다

오늘밤에는 뭘 할 수 있을까

 

옷소매가 길어 손등을 덮었다

자주 팔뚝을 쓸어 올려 설산 너머 팔이 길어져도

긴 옷소매가 흘러내려 이내 손등을 가렸다

두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만 나를 에운다

 

혼자였다면 죽은 사람이었을 거라고

누가 모닥불을 피운다

내가 아는 말로 나는 가까스로 말할 수 있을 뿐

다 지우고 나자 내 손에 돌 하나 쥐여 있었다

 

 

 

―시집『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문학수첩,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