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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의 비결
허정분
느티나무 그늘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재작년 칠순 잔칫상 받은 지영 할머니
내 눈총 아랑곳 없이 연지 바른다
바글거리는 숯 검댕 파마머리
상사 급장 단 이마, 허옇게 뒤집어쓴
분가루 비듬처럼 나풀거려
오만상 몰래 차린 나를 비웃는 빨간 연지,
슬며시 외면해도 부러움으로 번지는 망상
빨간 입술을 훔치고 통통한 젖가슴을 훔치고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 속 재산도 훔쳐서
면박에 기댄 우리 부부
오늘 밤 한상 잘 차린 대례상 놓고
맞절하고 싶다는 꿈같은 생각 민망해라
얼굴 붉히는데
읍내 복지회관 탱고 춤추러 간다는 지영 할머니
탱글탱글 그 꼬리에 홀려
육백살 연세 드신 노거수 느티나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람피우는 대로(大路)
―시집『바람이 해독한 세상의 연대기』(시산맥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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