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김여사의 비결 /허정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5. 1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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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의 비결

 

허정분

 

 

느티나무 그늘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재작년 칠순 잔칫상 받은 지영 할머니

내 눈총 아랑곳 없이 연지 바른다

바글거리는 숯 검댕 파마머리

상사 급장 단 이마, 허옇게 뒤집어쓴

분가루 비듬처럼 나풀거려

오만상 몰래 차린 나를 비웃는 빨간 연지,

슬며시 외면해도 부러움으로 번지는 망상

빨간 입술을 훔치고 통통한 젖가슴을 훔치고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 속 재산도 훔쳐서

면박에 기댄 우리 부부

오늘 밤 한상 잘 차린 대례상 놓고

맞절하고 싶다는 꿈같은 생각 민망해라

얼굴 붉히는데

읍내 복지회관 탱고 춤추러 간다는 지영 할머니

탱글탱글 그 꼬리에 홀려

육백살 연세 드신 노거수 느티나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람피우는 대로(大路)

 

 

 

―시집『바람이 해독한 세상의 연대기』(시산맥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