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보자기에 밥통을 싸서 안고 /문성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5. 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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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에 밥통을 싸서 안고

문성해


밥이 설익어 벼르고 벼르다
보자기에 밥통을 싸서 안고 서비스센터에 갑니다
아직 영업시간이 되지 않은 그곳에서
나처럼 보자기에 법통을 싸온 한 여자가

저도 이것으로 연명을 하고 살았어요
이것으로 푸푸 슬픔을 끓여 먹고 살았지요
동그란 무릎 위에 아이를 앉히듯
둥근 밥통을 올려놓고 있었어요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러고 있었던 듯 앞만 보고 있었지요
밥이 없던 시절
텅빈 위를 몸안에 달처럼 띄우고
벌판 끝에서 오는 먹을 것을 기다리던
눈알이 까맣던 사람들처럼

오늘은 당신도 나도
고장난 밥통을 감쪽같이 씻어 안고 나와
이제부터는 이 속에 누런 쌀알 대신
서퍼런 보름달 한 개를 안칠 거라고

이 아침의 햇살과
이 번지는 푸름과
부서지는 새소리를 끓여낼 거라고
그러면 우리들의 매 끼니는
팝콘처럼 환해질 거라고

밥통을 안고 나란히 앉은 우리는 그 옛날
검은 무쇠솥이 내걸린 전장이거나
해질녘 백인분의 어탕이 끓던 강가에서
검은 치마를 추스르거나 스쳤던 속절없는 인연만 같고
그때 나는 뱃속의 것을 다 토해내듯 헛구역질을 했던 것 같고
그런 나의 얇은 등판을 누군가 두드려줬던 것 같고

밥풀들이 누린내를 져버리고
오늘부터 이 밥통은 치익치익
살아 날뛰는 서정을
그 속에 넣어 안칠 거라고

당신은 그 보자기 안에
검푸른 폭탄 한 개를 싸안고 있습니까?
나는 이보자기 안에
붉은 벼슬의 암탉 한 마리를 싸안고 있습니다

 

 

시와함께(2021,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