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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전략
김형로
저 꽃들 어디 쟁여놓았나
저 작은 꽃망울 속에서는 어림없지
나무 몸속 어딘가 작업장 있을 것 같은데
과학은 아직 그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뿌리의 어두운 행적에 대해서도 밝혀진 것이 없다
얼마나 땅속을 헤집어야
저토록 뜨거운 꽃을 길어 올릴 수 있을까
어둠에서 뿌리는 어떻게 저런 색을 찾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유발하는 게 꽃의 전략이다
궁금한 사람들은 꽃으로 다가간다
꽃구경 잘한 사람들 중 몇은
꽃병인 줄도 모르고 죽기도 한다
꽃구경에도 공짜는 없다는 듯
꽃은 지상 최고의 거름인 사람 목숨을 먹고 핀다
영정 주변에 저를 둘리는 것은 꽃들의 마지막 배려다
붉고 희고 노란 꽃들이 필 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게 좋다
꽃들이 얼굴을 스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이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특히 꽃의 시샘을 조심해야 한다
아까운 사람들 먼저 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앗! 빨리 엎드려라
저기 여기 꽃이 피어 사람을 찾고 있다
ㅡ『시산맥』(2021,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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