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숲과 광장 /이여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6. 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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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과 광장

 

 이여원

 

 

  함성은 광장의 구조물이다

 

  저녁의 광장을 깨고 아침의 나무를 심고

  뾰족한 구호들을 몰아넣는다면

  끔찍한 숲이 될 것이다

  독재자가 쫓겨난 광장을 숨기려고

  숲을 가꿨다면 함성은 새들의 몫이다

 

  함성을 뽑아내고 고요한

  나무들을 심었다면

  숲은 스스로 불을 밝히고

  잿더미가 되려고 할지도 모른다

 

  서울 숲을 걷는다

  숲은 비밀을 품고 비밀스럽게 깊어만 갔다

 

  구호를 쫓아낸 광장엔 자전거가 넘어지고 관변 벽보가 비좁고, 어깨와 어깨를 기대며 한가롭거나 외로운 숲 오래된 나무는 나이테를 깊이 감추고 싱거운 잎만 보여준다

 

  때론 광장은 비좁은 숲이 된다

  콩코르드도 세비야도 광장은 언제나 숲이다

 

  숲들은 언제나 큰물보다 느리고

  봄은 늘 겨울보다 앞섰다

  머리와 머리를 맞댄 숲은 웅성웅성 자란다

  종아리가 굵은 키 큰 나무들이 자라고

  숲은 곧 숨일 것이다

 

  광장의 구조물은

  하나로 뭉친 구호들이다

 

 

―『시산맥』(2021.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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