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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아시죠
김승희
내 이름 아시죠
눈보라 치는 언덕에 묻혀 있어요
이름 없는 구근(球根), 조마조마
두 눈을 감고
긴 겨울의 어둠 속에 알몸을 파묻고 숨만 쉬면서 죽은 듯이 있죠
내 이름 아시죠
이름은 천국의 뒤에 오고
생일은 지옥의 앞에 오죠
잠깐 현관에 멈춰서서
왜 태어났을까
어떻게 죽을까
그런 것만 고민하다 보면 가족도 친구도 잃어버리고
꽃병은 말 못할 파란 심장으로 가득 하죠
내 이름 아시죠
무덤을 열고 나와
흘러넘치는 수선화의 물결을 지나
아니, 아니, 아니요
누군가 골목에 내놓은 하얀 연탄재 구멍 속에
조마조마 샛노란 손을 꽂아 놓았죠, 내 이름 아시죠
―계간『미네르바』(202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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