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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퍼센트 동화
김은후
태초에 술 한 모금이 있었다
촘촘히 밀봉해도
빠져나가는 2퍼센트의 취기가 있다
지고 가지는 못해도 마시고 가라면 다 마실 수 있다던 작은아버지의 변명
술버릇을 만나는 순간
불콰한 흥이 되기도 온갖 욕설이 되기도 하지
벌겋게 달아오른 광기 속, 가끔 제정신이 들 때도 2퍼센트라 하자
비가 오고 우묵한 데 물이 고였다 버찌가 떨어지고 2퍼센트 주정이 숨어들었다 사슴이 와서 불안을 마시고 갔다 뿔이 한바탕 노래를 불렀고 노래에선 진한 벚꽃 냄새가 났다 동무들 데려와 홀짝홀짝 들이켜고 궁둥이를 맞대고 춤을 추었다 구름으로 잘 덮어두고 다시 찾은 주점에 술이 사라졌다 뿔들은 구름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건 천사의 몫이야
다시 비를 기다리고 버찌를 기다려야 해
한 해를 기다리라고!
뿔들은 뛰어가며 술,술,술 했다
마지막까지 술이 가득 차 있던 작은아버지 몸에서
생전이 빠져나갔다 우리는
누구도 만나지 않은 발효 기간과
선량한 2퍼센트와
취기의 독과
천사의 몫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시집『2퍼센트 동화』(한국문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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