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눈물의 발원지
권선희
종합운동장 맞은편 2층 유방외과에서 오른쫀 악성신생물 진단을 받았을 때
기가 찼다. 계단에 주저앉아 도로를 질주하는 낙엽들을 바라보며 암만, 시인 생에 하나쯤은 다녀가야지.
암병원 5번방에서 오른쪽, 왼쪽, 림프 전이까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찔했다. 화장실 벽에 기대어 이번 생은 조졌구나
생이 화투판이라면 화끈하게 판을 엎어야 하는 거 아닌가.
수술 후, 문드러진 가슴도 가슴이라고 빼또롬하게 남겨 놓은 젖꼭지를 만지며
볼 놈도 없는데 확 밀어버릴 것이지.
방사선 치료를 위해 남자가 내 가슴에 보라색 십자가를 세 개나 그릴 때
어이쿠, 하필 밥 버는 일이 초토화된 젖퉁어리에 종일 십자가를 긋는 것이라니
요양병원 1305호 내 옆 침대에는 마흔네 살 어린이집 원장이었던 여자
겨울 내내 밥 한 술 못 먹다 벚꽃 피자 죽어 나갈 때
늙은 어미가 벽에 걸린 딸의 긴 머리 가발을 챙길 때
비로소 씨팔노무 인생, 눈물이 시작되었다
―계간『사람의문학』(2021, 여름호)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퍼센트 동화 /김은후 (0) | 2021.07.17 |
---|---|
어둠이 날아간 곳 /김은후 (0) | 2021.07.17 |
오늘은 월척 /이윤소 (0) | 2021.07.15 |
귓속이 소란하다 /정영선 (0) | 2021.07.15 |
늙마의 꿈 /洪海里 (0) | 2021.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