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 / 여자여서 여자를 안다 - 김명원의 ‘화장실에서 1’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9.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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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 / 여자여서 여자를 안다 - 김명원의 ‘화장실에서 1’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 / 여자여서 여자를 안다 - 김명원의 ‘화장실에서 1’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 / 여자여서 여자를 안다 - 김명원의 ‘화장실에서 1’


화장실에서 1

김명원


한 칸
참 고요한 방

햇살 한 점 들지 않는 묵언의
꽉 찬 정적을 헤치고

어둠에 길을 내며
나의 아랫도리를 마음 놓고 드러낸다

환하게 켜지는 여성성
탐스러운 수풀 사이로 뻗어 있는
무성한 원시림에 기꺼이 이른다

옆방의 여인도 조용한 저 속에서 
현실을 가만가만 벗고 있으리라 

한 점 시름을 깊이 드리우고
저 여인과 나, 얼마나 마음 놓고 앉아 있을 수 없었던가
얼마나 헛발질하는 이 방 밖의 공간에서 얻어터지고 있었던가

쉽사리 돌아서 갈 수도 없는
내처 걸어온 골목들이 얼마만큼이나 많았던지
소리 내지 않고 울었던 기억의 실밥들이 얼마나 터져 있었던지

이제야 비로소 방뇨를 한다
시원한 슬픔을 쏟는다 

저 여인이 떨어트리는 몸속의 강물
길 여는 소리
한 소절,

내가 떨어트리는 대지의
목 축이는 은근한 소리
한 곡조 
  
만나며 만나지 못하며
우리는 결국 하나의 바다에서
배설의 샘들이 마르지 않는 생명의 노래로 노래로
선선히 섞일 것이다. 

―『애지』(2003. 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 / 여자여서 여자를 안다 - 김명원의 ‘화장실에서 1’
<해설>

방뇨가 왜 “시원한 슬픔”일까? 여성이기에 그런 것이다. 화장실 변기 위에 앉은 여성 시인이 옆 화장실의 여인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전개된다. 시인은 자신의 아랫도리를 “탐스러운 수풀 사이로 뻗어 있는/ 무성한 원시림”으로 표현한다. 그곳은 이성과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쾌락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생명체를 회임하여 출산할 수 있는 거룩한 대지이기도 하다.

이 땅의 여성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혹은 대지모신으로 추앙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시인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이다. 저 여인과 나는 “헛발질하는 이 땅 밖의 공간에서 얻어터지고 있었”으며, “소리 내지 않고 울었던 기억의 실밥들이 얼마나 터져 있었던지” 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변기에 앉아 방뇨하면서 ‘저이도 나도 여자니까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받았을 고통이 보통이 아니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이다.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남편을 죽인 아내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얻어터지면서 살다가 어느 순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시인은 여성의 방뇨에 중차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방뇨를 함으로써 우리 “몸속의 강물”은 “길을 여는” 것이다. 대지는 그 배설물로도 목을 축인다. 옆 화장실의 여성과 내가 만나지는 못할지언정 “결국 하나의 바다에서/ 배설의 샘들이 마르지 않는 생명의 노래로 노래로/ 선선히 섞일 것”임을 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시간대에 앉아서 방뇨하는 이 행위를 통해 시인은 저이와 내가 같은 여성임을 확인하고, 이 가혹한(?) 운명에 자부심을 느낀다.

김명원 시인은 대장암 3기의 고통을 이겨내고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집 『슬픔이 익어, 투명한 핏줄이 보일 때까지』『달빛 손가락』을 보면 이 땅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하는 시편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내 어머니와 고모님, 이모님들을 존경한다. 그분들은 가혹한 운명의 불화살을 맞으면서 뭇 생명체를 거둬들인 대지모신이기 때문이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