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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1) / 혈연의 죽음 - 김명인 시인의 ‘부석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9. 1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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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1) / 혈연의 죽음 - 김명인 시인의 ‘부석사’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1) / 혈연의 죽음 - 김명인 시인의 ‘부석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1) / 혈연의 죽음 - 김명인 시인의 ‘부석사’

 

부석사

김명인

 

한 시절 반짝임 푸른 무량이어서 
청록 지천만큼이나 탕진 끝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센 머리 허옇게 뒤집어쓴 
겨울 소백산맥 바라보며 
외사촌 아우 빈소 자리로 가고 있다 
눈발이나 희끗거릴 바람의 마력이라면 
힘껏 던져도 부풀릴 수 없는 바위 꿈 
매양 처지는 길뿐이겠느냐. 
어떤 필생을 거기 매달았다 해도 
지금은 헐벗은 가지들, 그 떨림만으로 
고스란히 눈꽃을 받들고 있다. 
눈구덩이에 처박힌 바퀴 빼내려고 
질척거리는 발밑 다잡다 보면 
여기 어디 뜬 돌 위에 지어진 절 이정표가 섰었는데 
산모퉁이 몇 번 다시 감돌아도 
겹겹 등성이만 에워쌀 뿐 절은 안 보인다. 
안 그래도 금세 함박눈 차폐되어 가로막는데 
그 막 안에 또 내가 갇혔다. 부석사 
뜬 돌 위의 허공이어서 
나는 절에 기대지 않고 저 눈의 벽에 쓴다. 
잿빛 가사(袈娑) 너풀거리며 내려서는 하늘.
오래지 않아 이 길도 몇 마장 안쪽에서 
아예 지워지겠지만 이미 푸석거릴 부석사 뜬 돌.
거기도 부유(浮遊)의 끝자리는 있으리라.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지성사, 2002)

 

<해설>

목조건물 무량수전이 있어 더욱 유명한 절 부석사는 경북 영주에 있다. 『삼국유사』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불교를 더 깊이 공부하고자 당나라로 떠난 승려 의상은 상선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도의 집에서 며칠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했으나 의상은 선묘를 감화시켜 불자가 되게 하였다. 선묘는 의상에게 공양하려는 지극한 정성으로 저만큼 떠나가는 배를 향해 기물상자를 던져 의상에게 전하고는, 다시 서원(誓願)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는 용이 된다. 용이 바위로 변하여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했다고 한다.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한 용이 변화했던 바위라고 전해진다.

덧없어라, 인간의 목숨이여. 소백산맥 어느 산자락에 시인 본인의 외사촌 아우가 묻혀 있나 보다. 바로 그 근처에 부석사가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부석사에 아우의 위패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인가. 아무튼 빈소로 가는 길과 부석사로 가는 길이 거의 같은 방향이다. 외사촌 아우가 승려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浮石寺’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를 화자는 설화와 상관없이 “뜬 돌 위의 허공”으로 설명하고 있다.

산모퉁이를 몇 번 다시 감돌아도 겹겹 등성이만 에워쌀 뿐 절은 안 보이는데 그만 함박눈을 만난다. 차가 제대로 나아가지 못할 정도의 함박눈이다. 마지막 4행에서 화자는 외사촌 아우가 맞이한 죽음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하늘→길→뜬 돌→부유의 끝자리로 이어지는 상념은 인연의 고리와도 같다. 누구나 때가 되면 임종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고, 저 돌 또한 부유의 끝자리가 있지 않겠는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다. 인생은 짧고 시의 시간은 무량하다. 시인의 외사촌 아우는 이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함으로써 아주 오래 살게 되었다. 혈연의 죽음은 김명인 시인을 슬픔에 잠기게 했지만 그에게는 펜이 있어서 외사촌 아우의 혼을 오래오래 부석 위를 떠돌게 하였다. 부석사에 가면 김명인의 이 시가 생각날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