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능소화가 지는 법 /복효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9. 1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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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가 지는 법

 

복효근

 

 

능소화는 그 절정에서

제 몸을 던진다

 

머물렀던 허공을 허공으로 돌려주고

그 너머를 기약하지 않는다

 

왔다 가는 것에 무슨 주석이냐는 듯

씨앗도 남기지 않는 결벽

알리바이를 아예 두지 않는 결백

 

떨어진 꽃 몇 개 주워 물항아리에 띄워보지만

그 표정 모독이라는 것 같다

꽃의 데스마스크

 

폭염의 한낮을 다만 피었다

진다

왔던 길 되짚어가고 싶지 않다는 듯

수직으로 진다

 

딱 거기까지만이라고 말하는 듯

연명치료 거부하고 지장을 찍듯

 

그 화인 붉다

 

 

 

―『실천문학』(2021,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