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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김혜련
차 한 잔 앞에 놓고 나는 당신의 호흡을 마셨네
바닥이 드러난 찻잔에 또 한 번의 시간을 리필했지
나란히 또는 마주 앉아
이제 팬데믹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그때를 생각하네
잠복은 보이지 않아 서로를 의심하고
간밤엔 어떤 비말이 내 안에 병든 씨를 틔울지
짧은 잠의 잰 발소리가 불안을 키운다
봄은 사람을 비껴 건너와 쓸쓸히 떠나갔지
노란 유채꽃밭은 한철을 갈아엎고
뚝뚝 떨구는 벚꽃들의 독백에 나무는 발등까지 시렸지
우리는 봄을 멀리 떠나 있었네
꽃이 피고 지는 동안 우리 사이에 끼어든 틈, 틈
아직 내가 마신 절반의 숨을 기억하는데
우리의 틈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네
―『모던포엠』(2021.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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