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사막풍토병 박주가리 /최수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9. 1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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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풍토병 박주가리

 

최수일

 

 

감천내 방죽

개망초꽃 하나 땅에 머리가 닿을 듯

박주가리넝쿨에 친친 감겼다

 

순간, 오래전 그 황량했던 사막공사현장

전갈도 견뎌내기 힘든 모진 더위와

낙타도 절레절레하는 모래바람을 이겨내며

밤낮 뛰어다녔던 그때의 나를 보았다

 

어느 아침에

용변을 마치고 일어서려다 주저앉고 말았다

천정에서 지켜보던 도마뱀이 안 됐다고 혀를 날름댔다

시간이 지나도 혼자 일어서기 힘들고

오르막길이나 계단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승용차 문을 열려고 하니

손가락에 힘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혁대 한쪽 끝을 자동차 손잡이에 걸고 당기는데

그걸 지켜보고 있던 들개들이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컹컹 짖어댔다

 

갖가지 검사를 해본 의사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오히려

내 꾀병을 의심했던

병명도 몰랐던 그 혼자만의 아픔

 

거칠고 피폐한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몸을

황폐한 기후에서 억세게 자란

사막풍토병박주가리가 친친 감고

중력보다 더 세게 눌렀던 것이다

 

개망초를 친친 감은 박주가리를 애써 떼어낸다

 

 

 

―『모던포엠』(2021.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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