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 / 아버지의 아들 욕심 - 함순례의 '사랑방'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 / 아버지의 아들 욕심 - 함순례의 '사랑방'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 / 아버지의 아들 욕심 - 함순례의 '사랑방'
사랑방
함순례
울 아부지 서른, 울 엄니 스물 셋 꽃아씨, 아부지 투덕한 살집만 믿고 신접살림 차렸다는디, 기둥 세우고, 짚과 흙 찰박찰박 벽 다져, 오로지 두 양반 손으로 집칸 올렸다는디, 부쳐먹을 땅뙈기가 없는 기라
내사 남아도는 게 힘이여 붉은 동빛 박지르며 집을 나서면, 이윽이윽 해가 지고, 어둠별 묻히고야 삽작을 밀고 들어섰다는디, 한 해 두 해 불어나는 전답, 울 엄니 아부지 얼굴만 봐도 배가 불렀다는디……
늘어나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울 엄니 이태가 멀다 실제 배가 불렀다는디, 갈이질에, 새끼들 가동질에, 하루 해가 지는지 가는지 하 정신 없었다는디, 울 아부지 저녁밥 안치는 엄니 그대로 부엌바닥에 자빠뜨린 거라
그 징헌 꽃이 셋째 딸년 나였더란다 첫국밥 수저질이 느슨할 밖에…… 임자 암 걱정 말어 울 아부지 구레나룻 쓰윽 훑었다는디, 스무 날을 넘기자 사랑방 올린다고 밤새 불을 써 놓고 퉁탕퉁탕 엄니 잠을 깨웠드란다 모름지기 사내 자슥 셋은 되야 혀 그때 되믄 계집애들이랑 분별하여 방을 줘야 않겄어!
그렇게 맨몸으로 생을 일궜던 울 아부지, 성 안 차는 아들 두 놈 부려놓고 이젠 여기 없네.
-『시와 사람』(2002. 봄)
<해설>
오늘은 어버이날, 어떤 시를 올릴까 고민하다가 부모의 ‘사랑+방’을 용기도 좋게 쓴 시를 골랐다. 이태가 멀게 임신하여 배가 불렀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자궁에 씨를 심었던 아버지의 정사가 “저녁밥 안치는 엄니 그대로 부엌바닥에 자빠뜨린 거라”는 적나라한 표현으로 형상화된 시라서 낯이 살짝 뜨거워진다.
아버지는 아들을 셋은 낳아야 한다며 산후조리를 겨우 끝낸 어머니를 깨워 퉁탕퉁탕 또다시 ‘방의 일’을 벌인다. 딸이 셋이지만 아들이 계속 태어나면 방을 나눠줘야 한다고 사랑방을 또 만든 아버지의 자식 욕심에는 고소가 머금어진다. 부쳐먹을 땅뙈기 하나 없던 아버지는 적수공권으로 시작해 집을 올리고, 방을 늘이고, 자식을 연이어 보고, 전답을 넓혀 나갔다. 그 아버지는 그러다 “성 안 차는 아들 두 놈 부려놓고” 저승으로 가버리셨다.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 왕성한 성욕과 자식욕심을 비난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 애틋한 정으로 그리고 있다. 이 시상에 부모 없는 자식은 없는 벱이다. 하모.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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